#1. 지난 27일 정오께. 경기 광명시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 부근 식당에 생산직 사원 셋이 모여 앉았다. 휴일이 아닌데도, 이날 이아무개(44·엔진가공부)씨는 근무를 하지 않았다. 야간조인 오아무개(46·차체1부)씨와 정아무개(46·조립1부)씨도 사정은 엇비슷하다. 이들이 지난주에 일한 날은 21일 단 하루다. 4월 들어 월요일과 금요일은 사실상 ‘공식’ 휴무일이나 다름없다. 회사의 생산물량 축소 방침으로 휴일 특근과 잔업이 없어진 데 이어 주 40시간 근무도 채우기 어렵다. 이씨가 보여준 1월 급여 명세서의 ‘연장근로’ 항목엔 ‘0.5’(시간)라는 숫자가 댕그라니 찍혀 있다. 공장이 정상 가동될 땐 잔업만으로도 최소 ‘40’(시간) 이상의 숫자가 쓰여 있던 자리다. ‘휴일 특근’이 없어진 것까지 고려하면 임금이 100만원 가까이 깎였다.
#2. 같은 날 저녁 7시. 흐린 날씨로 잔뜩 찌푸린 지엠대우자동차 부평공장. 토스카 등 중형차를 생산하는 2공장 품질확인부 소속 김아무개(41)씨는 어깨가 축 늘어진 채로 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김씨는 요즘 1주일에 2~3일만 일한다. 지난해 12월부터 일감이 확 줄었다. 임금은 사실상 반토막이 났다. 지난 2~3년간 일이 너무 많아 잠도 제대로 못 잘 지경이었던 때가, 요즘은 꿈만 같다. 그는 2001년 정리해고된 뒤 택배회사 등을 전전하다 2006년에 다시 복직했다. 김씨는 “해고기간 동안 쌓인 빚 때문에 아직 더 많이 일해야 하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 사라진 잔업·특근, 얇아진 월급봉투 한때 고임금 노동자의 대명사였던 완성차 공장 노동자들이 얇아진 월급봉투에 시름하고 있다. 대량 정리해고 통보를 앞둔 쌍용자동차는 물론이고, 미국 지엠(GM) 본사의 고강도 자구책에 휘청이는 지엠대우차, 그나마 여건이 나은 편이라는 현대·기아차 소속 직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물량 축소→특근·잔업 감소→휴무일 증가로 이어진 상황은 생산직 사원의 임금을 30~50% 줄여놨다.
지엠대우차 직원들은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한 달에 26~27일씩 일을 했지만, 올해 들어선 평균 근무일수가 열흘 남짓이다. 한 달에 300만원을 받던 10년차 직원들의 임금이 150만원대로 뚝 떨어졌다. 연장근로 수당은 사라졌고, 공장이 돌지 않는 날엔 평균임금의 70%만 받기 때문이다. 김윤복 금속노조 대우차지부 교육선전실장은 “주로 중형차를 생산하는 부평공장의 타격이 제일 크다”고 말했다.
완성차 업체들의 이런 사정은 수많은 자동차부품업체로 뻗친다. 금속노조가 이달 22일 기준으로 산하 사업장 199곳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12월 이후 특근 및 잔업이 사라진 곳이 138곳, 휴업을 한 적이 있거나 하고 있는 곳은 140곳에 이른다.
임금이 줄어든 일부 직원들은 자녀 학원비 등을 벌기 위해 ‘알바’에 나서기도 한다. 기아차의 정아무개씨는 “주말에 대형마트에서 주차관리인으로 일을 하거나 밤마다 대리운전을 뛰는 이들도 적잖다”며 “집에서 아이 돌보던 부인들도 학원 보조 선생님 등으로 취업전선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지역 상권도 타격을 받고 있다. 이 공장 소속인 최아무개씨는 “불황에 뜬다는 당구장만 활황”이라고 전했다.
■ 근로시간 계정제 등 제도 보완 필요 완성차 노동자들의 생활불안은 경쟁력 저하를 야기할 수 있다. 고용 전문가들은 장시간 근로에 의존한 임금체계를 문제로 지적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성재 연구위원이 종업원 1000명 이상 자동차 및 부품회사의 생산직 임금 구성 항목(2006년 기준)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초과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은 21.4%, 특별급여가 차지하는 비중도 29.3%에 이른다. 휴일 특근과 잔업, 성과급 등으로 채워지는 임금 비중이 50.7%라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차 생산직 노동자들의 2007년 근로시간 구성을 보면 전체 2528.3시간 중에서 연장근로와 특근의 비중이 33.9%(856.7시간)나 된다. 기본급 비중은 28.9%에 불과하다. 초과근로 수당이나 특별급여에 의존해야만 임금 유지가 가능한 구조인 셈이다.
조 연구위원은 “기본급 비중이 작은 대신 연장근로 수당 등이 고정급 구실을 하는 임금체계의 허점이 드러난 것”이라며 “일감이 많을 때 잔업 한 시간을 저축해 놓았다가 경기침체 때 찾아 쓸 수 있는 독일의 근로시간 계정제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의 이상호 연구위원도 “정부 차원에서 단축노동지원금제도 도입 등 물량 축소에 대한 대안을 다각도로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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