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총재 “고용 감소…소비수요 살아나기 쉽지않아”
“단기 유동성 당장 대책 써야할 정도 아니다” 밝혀
“단기 유동성 당장 대책 써야할 정도 아니다” 밝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끝까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즐겼다. 그의 입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한 것 아니냐는 느낌을 갖고 있다”는 얘기가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한은이 오히려 ‘경기 회복론’과 아직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음을 강하게 내비쳤다. 12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현재의 2% 수준에서 동결하기로 결정한 뒤, 기자들에게 그 배경을 설명하는 자리에서다.
한은도 ‘경기 회복론’ 쪽으로 분명히 반걸음 정도 무게를 옮기기는 했다. 금통위 뒤 배포된 자료에서 한은은 “최근 국내경기는 하강 속도가 뚜렷이 완만해지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가파른 하강세가 둔화되는 기미가 보인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서 좀 더 나아간 것이다. 지난달 “경기 하락세가 감속되고 있음을 시사한다”던 문구가 “완만하나마 정(+)의 성장세를 보인다”로 바뀌기도 했다. 이 총재도 “한두 달 전보다 나빠진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며 “여러 가지 지표를 보더라도 경기 하강 속도가 완만해졌다는 것은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큰 틀에서 한은의 경기 전망은 여전히 밝지 않았다. 이 총재는 “선진국 시장의 전망이 썩 좋지 않고, 내수 쪽에서도 고용이 아직 감소하고 있고 임금상승도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소비수요가 크게 살아나기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며 “경기후퇴는 아니지만 현저하게 살아난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특히 “올해와 내년까지 합쳐놓고 보면, 2010년의 경제규모도 2008년을 못 따라가는 것 아니냐”며 “이런 의미에서 상당히 침체가 깊고 길다”는 평가를 여전히 버리지 않았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과잉 유동성’ 문제를 바라보는 한은의 태도에서도 ‘보수적’ 경기전망을 엿볼 수 있다. 이 총재는 “경제환경이 크게 바뀌는 상황에서는 유동성을 단기 형태로 갖고 있는 현상이 으레 나타난다”며 “단기 유동성이 큰 문제를 일으켜 당장 무슨 대책을 써야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협의통화(M1) 증가율이 빠르게 늘고 있는 현실을 두고, 당장 과잉 유동성에 대한 우려를 키우기보다는 여전히 금융 중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다는 쪽에 판단의 무게를 실은 셈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과잉 유동성 논란과는 분명하게 선을 그은 것이다. 실제로 현금성 통화 위주의 협의통화(M1) 증가율은 지난해 9월 2.7%에서 올해 3월 14.3%로 가파르게 오르고 있지만, 정작 넓은 의미의 유동성을 뜻하는 광의통화(M2)나 금융기관 유동성(Lf) 증가율은 같은 기간 뚜렷하게 낮아지는 추세다. 한은이 시중에 돈을 풀었음에도 정작 경제 전 영역으로 돈이 잘 스며들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를 뒤집으면 그만큼 경기 불확실성이 강하게 남아있음을 반증한다는 게 한은의 판단으로 보인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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