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테스코 홈플러스 이승한 회장
등록제 등 대기업 진출제한 법안 추진에 반발
세계무역기구 규범 내세워 법적 공방 갈수도
세계무역기구 규범 내세워 법적 공방 갈수도
정부와 여당이 대형 유통업체의 슈퍼마켓 출점 속도를 늦추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홈플러스 이승한 회장이 ‘법적 대응’까지 거론하며 반발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라는 브랜드로 기업형 슈퍼마켓을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는 홈플러스는 영국 테스코그룹이 94% 지분을 가지고 있어, 자칫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을 근거로 한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승한 회장은 23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대형마트 5개사 주최로 열린 공정거래 협약 선포식에 참석해 “정부의 슈퍼마켓 규제에 대해 할 수 있는 한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법적 대응도 고려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유통업에는 온라인몰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유독 슈퍼마켓 업태에 대해서만 대기업 진출을 못 하게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발했다.
이날 함께 참석한 신세계 이마트의 이경상 대표는 대응 방안을 묻는 질문에 “원래 (소형 점포) 30개를 낸다는 목표였는데 갑자기 이렇게 돼서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며 구체적인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또 업계 차원 공동 대응 여부에 대해서도 “서로 진도가 달라 공통분모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부정적인 태도를 에둘러 표현했다.
이 회장이 규제 움직임에 이처럼 정면 반발하는 것은 ‘대기업 슈퍼가 골목 상권을 다 잡아먹는다’는 논쟁의 핵심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주거지역에조차 아무런 제재 없이 들어설 수 있는 1000㎡(300여평) 이하 기업형 슈퍼는 중소상인과 영세 자영업자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2006년 32개, 2007년 57개, 2008년 110개, 2009년 6월 현재 152개로 점포를 급속도로 늘려가고 있다. 게다가 330㎡(100평) 미만이 87%인 132개에 이를 정도로 슈퍼 몸집도 작다.
이 회장은 삼성테스코 홈플러스에서 점포 수가 2개였던 1999년부터 사령탑을 맡아 10년째 ‘이마트 따라잡기’를 추진해왔다. 최근 들어 핵심 수단은 기업형 슈퍼 사업이다. 포화상태인 대형마트 성장 경쟁은 한계에 이른 만큼 소형 다점포 전략으로 경쟁사를 추격하겠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런 노력으로 2010년에 업계 선두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경영 방식에 대한 업계와 전문가들의 비판도 적지 않다.
원종문 남서울대학 교수(경영학)는 “동네 슈퍼 크기로 지나치게 소형화한 점포는 효율성을 발휘하기 쉽지 않아 언젠가는 편의점처럼 프랜차이즈의 길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럴 때 프랜차이즈 계약이 일방적으로 기업에 유리해지면 동네 슈퍼 주인들을 대기업에 종속시키는 결과만 낳을 뿐”이라고 말했다. 경쟁사인 신세계 임원들은 뒤늦게 슈퍼 사업에 발을 담그면서도 홈플러스 슈퍼 사업의 수익성에 공공연히 회의적 견해를 내놓는다.
대기업 유통매장을 면적에 상관없이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법안을 내놓은 이상민 의원(자유선진당)은 “꼭 법적 규제가 아니더라도 대기업 쪽에서 중소 유통이 숨쉴 구멍을 줘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금도를 넘어섰다”며 “세계무역기구 규범 위배를 들고 나오지만, 중소 유통 균형 발전이라는 또다른 정책 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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