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권 지폐가 처음으로 시중에 배포된 23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발권창구 앞에서 한 시민이 방금 교환한 새 지폐를 들어 보이고 있다. 뒤편으로 5만원권을 교환하려는 시민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정부·은행 등 자금세탁·위폐 대책 마련 고심
5만원권 지폐가 시중에 처음으로 풀린 23일 은행 영업 창구에는 신권을 구하려는 고객들로 붐볐다. 교환 수요가 몰린 영업점에서는 고객이 길게 줄을 늘어서는 모습도 보였다. 고객들이 몰리자 교환 금액을 제한하기도 했다. 국민은행은 한시적으로 1인당 20장 한도로 교환해주기로 했다.
현금입출금기(ATM·에이티엠)를 통해 5만원권을 인출하기는 쉽지 않았다. 대다수 은행 지점에는 5만원권을 인식할 수 있는 현금입출금기가 1대만 설치돼 있거나, 아직 없는 곳도 있다. 국민은행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거점 점포 위주로 5만원권을 쓸 수 있는 250여대의 에이티엠을 설치했다. 우리은행은 300여개의 에이티엠에서 5만원권을 사용하도록 조처했다. 이 때문에 고객들은 5만원권을 인출할 수 있는 기기 앞에만 줄을 서는 경우가 많았다.
이날 시민들 사이에선 현금 유통이 활성화되리라는 기대감과,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담담함이 교차했다. 남대문시장에서 옷가게를 하는 박미숙(47)씨는 “그동안 10만원짜리 수표를 받으면 휴대폰 번호와 이름을 적어야해 불편했는데 그런 수고를 덜게 됐다”며 좋아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남대문시장에 물건을 사러 온 주부 이미선(44·양천구 목동)씨는 “아무래도 5만원짜리를 사용하면 씀씀이가 커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36년만에 새 고액권이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함에 따라, 정부와 경찰, 시중은행들은 자금세탁과 위폐 제조 등 각종 불법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자금세탁 방지업무를 맡고 있는 금융정보분석원의 김영과 원장은 이날 “5만원권 발행을 계기로 뇌물수수, 자금세탁 등 불법행위가 늘어날 수 있는 만큼 모니터링과 분석에 보다 많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찰도 위조지폐 식별요령 등이 적힌 안내문을 경찰서에 배치하는 등 위폐 사건 대비에 나섰다.
이와 별도로 한국은행은 5만원권 위폐를 막기 위해 ‘지폐 위조방지장치 확인카드’ 4만개를 제작해 금융기관, 유통업체 등에 제공할 방침이다. 이 확인카드에는 아크릴 재질에 돋보기와 숨은 숫자 확인창이 들어있는데, 5만원권 지폐 앞면 인물 그림 오른쪽에 있는 동그란 무늬에 이 카드를 대면 숫자 ‘50000’이 나타나기 때문에 위폐 여부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한은은 또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은행권의 길이로 종류를 구별할 수 있는 ‘지폐종류 확인카드’ 1만개를 제작해 시각장애인 유관기관 및 단체 180여곳에 배포할 예정이다.
5만원권 첫 발행일에 모두 3천여만장의 5만원권이 시중에 풀려나갔다. 한국은행은 이날 금융기관의 5만원권 인출 수요는 전국적으로 모두 1조6462억원(3292만4000장)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한은은 5만원권 인출 수요가 이달말까지 누계 2조원(4천만장) 정도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최우성 이경미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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