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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축소 비난 피하려 ‘눈가리고 아옹’
정부가 국토해양부의 4대강 사업비 15조4000억원 가운데 8조원을 한국수자원공사에 넘기기로 한 것은 내년부터 갑작스레 예산이 늘어나는 4대강 사업이 다른 정부 예산 사업을 잠식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다. 국토부는 수자원공사가 사업비를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 이자만 부담하면, 4대강 사업 강행에 따른 다른 사회기반시설(SOC) 예산의 축소 압박을 완화시킬 수 있다. 수자원공사의 빚은 ‘국가채무’ 계산에도 포함되지 않는 까닭에 재정 건전성이 나빠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다.
수자원공사도 이자 비용을 정부가 계속해서 전액 대주기만 한다면 유동성 압박 없이 사업 규모를 키우는 효과를 얻는다. 이자 비용은 내년에 800억원에서, 2011년 2550억원, 2013년 이후엔 연간 4000억원으로 늘어나지만, 예산 8조원을 3년에 걸쳐 지출하는 것과 견주면 아주 적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다른 물값 인상요인은 있지만, 4대강 사업에 따른 수자원공사의 부담 때문에 물값이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정부가 이자를 전액 부담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제는 수자원공사가 나중에 사업비를 얼마나 회수하느냐다. 정부는 수자원공사에 4대강 주변 개발권을 주겠다는 방침이지만, 수자원공사가 개발이익으로 사업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수자원공사가 개발이익으로 다 털어내지 못하는 빚은 다시 정부의 몫이 된다. 정부는 재정에서 그 빚을 떠안을 수도 있고, 물값을 올려 국민에게 부담을 조금씩 떠넘기는 방식으로 해결해갈 수도 있다. 결국 이번 조처는 어차피 예산에서 지출해야 할 것을 우선 이자만 내고 정산은 뒤로 미뤄두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셈이다.
정부는 수자원공사뿐 아니라 여러 공기업에 정부가 예산으로 해야 할 사업들을 떠넘기고 있다. 한국토지공사로 하여금 건설사 지원을 위해 미분양 아파트를 사게 한 것이나 코레일에 부실 민자사업인 인천공항철도를 인수하도록 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에 따라 공기업 부채가 급증하고 있다. 24개 공기업의 금융성 부채는 지난해 126조원에서 올해 안에 20조원가량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회계상으로는 국가채무가 아니지만, 훗날 문제가 생기면 재정에서 떠안거나 공공서비스 요금의 인상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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