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중국 광둥성 둥관의 인력시장 구인게시판에는 전기전자업체를 중심으로 한 회사들의 구인광고가 빽빽이 들어차 있다. 둥관 지역의 전기전자업체는 지난 6월부터 주문량이 대폭 늘어나 대규모로 인력을 채용하고 있지만, 중국의 대다수 분야 기업들은 여전히 예년 실적을 훨씬 밑돌아, 금융위기 1돌을 맞는 중국은 뚜렷한 명암을 보이고 있다. 둥관/박민희 특파원
[금융위기 1년 무엇이 달라졌나]
집 세채 가졌던 젱킨스 1년만에 셋방살이 신세 손녀 분유값 대기도 벅차
미국 반대편 중국에선 기업들 인력채용 바빠 성장 열매 나누기엔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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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 동쪽의 한 소도시에 사는 데비 젱킨스(58)는 지난 1월부터 주택 지하실 차고에서 셋방살이를 한다. 바닥에 카펫을 깔고 침대 등을 들여놓은, 난방이 안 되는 단칸방에서 딸과 세 손자 등 다섯 식구가 산다. 그는 33년간 부동산 중개업을 했다. 2004~2006년 부동산 호경기 때는 매년 수입이 배로 늘었다. 꽃가게를 차렸고, 은행 대출을 최대한 받아 집 세 채를 샀다. 10만달러짜리 고급 스포츠카인 시보레 코르벳을 몰았고, 골프 회원권도 샀다. 이 모든 것이 사라지는 데는 1년이면 충분했다. 가게, 집 세 채, 자동차 등이 가뭇없이 사라졌고, 의료보험에서도 탈퇴했다. 혈압과 천식 치료도 중단했다.
지난 1년 동안 젱킨스는 먹고살기 위해 뭔가를 계속 팔았다. 이제 더 팔 것도 남아 있지 않다. 마지막에 그는 40년 전 결혼과 동시에 샀던 자신의 묏자리마저 내놓았다. 8000달러 값어치가 있으나, 9개월 된 손녀의 분유와 또다른 손녀의 175달러짜리 병원비를 위해 1500달러에 팔았다. 젱킨스가 묏자리를 인터넷에 내놓고 있을 때, 딸은 식탁에서 파산신청서를 적고 있었다. 젱킨스는 딸에게 말했다. “내가 죽거든, 쓰레기통에 버려라”라고.
젱킨스가 사는 곳과는 지구 반대편인 중국 광둥성 둥관. 이곳에선 기업들이 때아닌 ‘인력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전자업체들이 지난 6월께부터 급격히 늘어난 주문을 맞추느라 대규모로 신규 인력을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둥관 인력시장엔 구인 벽보가 빽빽이 붙어 있고, 중개인들은 한 명이라도 더 붙잡기 위해 구직자들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곳 주민 덩아무개는 “전자업체나 컴퓨터 관련 경력자는 요즘 2~3군데 업체에서 합격 통지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1년을 맞아 세계경제는 중국과 아시아 신흥국 주도로 위기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고, 이로써 이번 경제위기가 ‘중국의 시대’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중국 정부도 조마조마하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벗어나고 ‘내수 중심의 성장 실험’을 전개했는데 좀처럼 성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의 새 항로가 불확실한 만큼 세계 경제도 여전히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둥관(광둥)/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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