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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네루다, 피노체트, 바첼레트

등록 2009-09-20 21:05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지난주에 이어 1973년 칠레 쿠데타 이후의 이야기를 해보자. 군부 쿠데타로 수십만명이 국외로 탈출했고, 수만명이 투옥됐으며, 3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아옌데의 오랜 동지인 민중시인 네루다는 197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산당 후보였는데, 아옌데에게 민중연합 후보를 양보하여 선거 승리를 일궈냈다. 그는 이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73년 9월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네루다는 사경을 헤매고 있었는데, 무장 군인들이 집에 들이닥치자 이렇게 말했다. “잘 찾아보게, 여기 당신들에게 위험한 게 한 가지 있지, 바로 ‘시’라는 거지.” 그는 2주 뒤 숨을 거두었다. 칠레 쿠데타를 주제로 한 영화로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그리고 잭 레먼이 열연해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실종>이 있다.

18년간 피노체트의 철권통치가 계속됐다. 그는 아옌데가 추진했던 사회주의적 정책을 모조리 폐지한 뒤 정반대 노선을 걸었다. 그는 시장만능주의 경제학의 메카인 시카고대학 출신들을 경제부처에 배치하여 국유화를 취소하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는 시장만능주의 정책을 폈다. 이들을 ‘시카고 아이들’(The Chicago Boys)이라 부른다. 쿠데타 몇 달 뒤 시카고대학 경제학과의 영수 밀턴 프리드먼과 아널드 하버거가 칠레를 방문해서 ‘칠레 경제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찬양했다. 그러자 시카고대학 출신으로서 종속이론 중에서 유명한 ‘저발전의 발전’ 가설을 만든 안드레 군더 프랑크는 공개편지를 학술지에 실어 살인마 정권을 찬양한 두 명을 정면 비판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웨덴의 군나르 뮈르달도 프리드먼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을 공개 비판했다.(본 난 2008년 10월27일치 참조)

1979년 박정희가 죽었을 때, 독재자 피노체트는 대통령궁에 조기를 걸려고 했는데, 참모들의 만류로 포기했다. 1998년 피노체트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 스페인의 판사가 피노체트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쿠데타 때 다수의 스페인인을 살해한 혐의였다. 피노체트는 뜻밖에 영국 감옥에 갇혔고, 마침내 정의가 실현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피노체트는 대처 총리의 도움으로 무사히 칠레로 돌아갔고, 2006년 늙어 죽을 때까지 정의의 심판을 받지 않았다. 이달 초 칠레 법원이 쿠데타 때 고문, 학살 혐의자 129명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칠레의 과거사 청산은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현재 칠레 중도좌파 정권의 여성 대통령 미첼 바첼레트는 쿠데타 당시 의과대학생으로서 구속당했고, 부친은 당시 쿠데타에 반대한 공군 장성으로서 고문당한 끝에 목숨을 잃은 슬픈 가족사가 있다. 노자가 말하기를 “하늘의 그물은 크고도 크도다. 엉성한 듯 보이지만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天網恢恢 疎而不漏)고 하는데, 과연 피노체트가 하늘에서는 정의의 심판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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