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두려움·투기적 수요 맞물려…온스당 1065달러 1년새 30%↑
FRB “디플레 위험이 더 커”…IMF 금 매각결정, 값 하락요인될 듯
FRB “디플레 위험이 더 커”…IMF 금 매각결정, 값 하락요인될 듯
금값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금의 과거 ‘영광’이 재현될 것이란 노랫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 기원전 16세기 리디아(지금의 터키)가 금은을 혼합한 주화를 사용한 이래 금은 약 3500년 동안 통화로서 영광을 누렸다. 1971년 달러 금태환이 정지되기 전까지만 해도 금은 화폐 가치를 보증하며 영광을 이어갔다.
13일(현지시각)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11월 선물은 온스(31.1g)당 전날보다 7.50달러 오른 1065달러를 기록했다. 1년새 30%나 올랐다. 여기저기서 금값이 머잖아 온스당 2000달러를 넘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인플레이션협회(NIA)는 6일 금값이 5400달러에 이를 것으로 점쳤다.
하지만 금값 상승 속도가 빨라지면서 ‘황금 버블’ 경계령 또한 격상되고 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줄리언 제솝 이코노미스트는 <비비시>(BBC) 방송에 “근거 없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 투기적 수요의 혼합이 금값 거품의 요소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값은 경기부양을 위해 풀어놓은 막대한 자금이 인플레를 불러올 것이란 공포를 등에 업고 있지만, 이는 상당히 과장된 것이다. 지난 8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보다 0.4% 증가에 그쳤고, 유럽과 일본도 낮은 인플레이션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부의장은 13일 “현재로서는 인플레(물가 상승)보다 디플레(물가 하락) 위험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온스당 850달러로 과거 금값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980년에 미국의 인플레이션 증가율(13%)과 비교해봐도, 지금의 인플레 우려는 부풀려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는 14일 “높은 금값은 두려움을 반영할 뿐이지 사실을 반영하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금값의 고공행진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약한 달러도 꼽히지만, 이미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달러 가치가 추가로 더 떨어질 여지는 그리 크지 않다. 마틴 울프는 “달러의 붕괴 위험은 작고, 다른 통화가 달러의 지위를 대체할 가능성은 더욱 적다”고 말했다.
지금의 높은 금값이 지속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200달러대로 추락했던 금값이 850달러 수준을 회복하는 데 28년이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난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유가도 배럴당 147달러를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또 다른 투자에 비해 금의 수익률이 높은 것도 아니다. 1980년 이후 지금까지 미국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약 1020% 뛰었지만, 금값은 23% 올랐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달 재원 확충을 위해 보유중인 403t의 금을 매각하기로 한 결정은 앞으로 금값 하락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통화기금이 1980년까지 1417t의 금을 시장에 내다 판 것도 당시 황금 버블 붕괴의 한 요인이었다. 금 생산비가 300~400달러란 점을 고려하더라도, 지금 금값은 너무 높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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