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인철 신세계 부사장
신세계, 창립기념행사
“윤리경영을 도입하니 매출이 늘던걸요. 로비나 다른 것에 신경 쓸 것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죠.”
23일 서울 명동 신세계 본점에서 열린 신세계 윤리경영 및 창립 79돌 기념행사에서 만난 김미옥 ㈜운현궁 대표의 말이다. 그는 이날 신세계의 윤리경영 협력회사 부문상을 수상했다. 재래시장에서 가내수공업으로 이불을 만들어 팔던 이 회사는 1997년 신세계 광주점에 처음 입점한 뒤 꾸준히 매장을 늘려 지금은 70여명의 식구를 거느린 어엿한 중소기업이 됐다.
신세계가 윤리경영을 도입한 지 10년째. 이제는 신세계뿐 아니라 협력업체들도 윤리경영이 회사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신세계 윤리경영에서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성과는 ‘신세계 페이’의 정착이다. 99년 제정한 윤리규범 3장 7조에는 “차 한 잔, 점심 한 끼를 협력회사와 같이 하더라도 반드시 자기 몫은 자기가 계산하도록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위해 계산기까지 따로 만들었다. 유통업계는 ‘갑을 관계’가 분명하다. ‘을’인 같은 품목을 생산하는 수백여 업체가 매장 하나에 들어가기 위한 로비도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 관계를 깨뜨리려고 오히려 ‘힘이 센’ 신세계가 먼저 나선 것이다. 당장 비용이 더 들 수도 있지만, 투명한 거래에 따른 협력업체의 믿음은 신세계의 강력한 응원군이 되고 있다.
윤리경영은 말처럼 쉬운 길은 아니었다. 허인철(사진) 신세계 경영지원실장(부사장)은 “윤리경영 도입 직후에는 우리도 뭘 해야 할지 몰랐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윤리경영의 정의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기업윤리사무국’을 운영하는 등 윤리규범 실천에 힘쓰면서 그 토대를 닦아 왔다”고 설명했다.
과연 윤리경영이 이미지 개선이 아닌 기업의 성장에도 도움을 줄까? 힘 있는 어조로 “당연하다”고 대답한 허 실장은 한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2006년 미국 월마트가 월마트코리아를 매각할 때 공개 인수·합병(M&A)을 하지 않고 신세계를 인수자로 선택했다. 허 실장은 “월마트는 고용 승계, 협력회사와의 계약 유지 등을 인수자 선정 조건으로 내걸었는데, 이를 지킬 수 있는 회사로 우리를 지목한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공개 인수·합병을 거치면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했던 인수 가격이 8000억원대로 낮아졌다는 게 허 부사장의 설명이다.
윤리경영을 표방한 지 10년째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신세계 임직원들의 생각이다. 허인철 실장은 “윤리경영 자체는 끝이 없는 것”이라며 “20~30년 뒤에는 윤리경영이 신세계를 더욱 튼튼하게 하는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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