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한국의 수도권 집중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름난 유럽 도시의 인구는 대개 100만명 미만인데, 서울은 1000만명에다가 인근 경기도까지 합하면 2300만명으로서 전국 인구의 48%가 수도권에 살고 있다. 수도권 집중이 심하기로 유명한 일본의 도쿄 인구가 전체의 33%이고, ‘파리와 그 밖의 프랑스의 사막’이라는 자조적 표현을 갖고 있는 프랑스에서도 파리권 인구는 19%에 불과하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전국에서 제일 좋은 것은 서울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러니 지방에 사는 절반의 인구는 동화에 나오는 시골 쥐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이것이 외국과의 큰 차이다. 외국에서는 지방 소도시에 살든 대도시에 살든 관계없이 자부심을 갖고 사는 데 비해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흔히 일본을 도쿄 1극집중체제라고 비판하지만 한국의 서울 1극집중체제는 일본을 훨씬 능가한다. 서울 집중이 1960년대 공업화 이후 심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실은 이 문제는 오랜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다. 그레고리 헨더슨의 명저 <한국: 소용돌이의 정치>(1968)를 보면 서울 집중은 이미 조선시대 500년을 통해 꾸준히 있었으며,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특이한 현상이라고 한다. 서울은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모든 것을 흡인하고 있었고 지방은 공백에 가까운 상태였다는 것이다. 1894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영국의 여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쓴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이란 여행기에는 서울 집중의 폐해가 생생히 묘사되고 있다. 비숍은 지방 관아를 세 군데 방문했는데, 어디서도 고을 수령을 만날 수 없었다. 수령의 행방을 물어 보니 똑같이 서울 갔다는 것이다. 지방 수령들은 백성들의 민생에는 무관심했고, 오로지 서울의 권세가에 아부하여 더 좋은 자리로 영전할 욕심밖에 없었다. 심지어 어떤 수령은 부임하면서 딱 한 번 내려와 잔치를 벌이고, 백성들의 재물을 약탈한 뒤 다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고 하니 더 할 말이 없다. 관청은 청소를 안 해서 누추하기 짝이 없는데, 관리들은 장죽을 물고 하루 종일 노름을 하고 있었고, 하는 일이라고는 아침저녁으로 시간 알리는 북을 치는 게 고작이었다. 오늘의 지방 정부를 생각하면 비숍의 관찰은 금석지감이 있으나 서울 집중은 그대로이고, 오히려 훨씬 더 심해졌다. 비숍은 당시 서울 인구가 20만명이라고 쓰고 있는데, 현재 매년 수도권 순유입인구가 20만명을 넘으니 100년간 서울 집중이 얼마나 심해졌는가. 지금 세종시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운데, 이 혼란은 사실 서울중심주의에 빠진 헌법재판관들의 ‘관습헌법’이란 괴이한 결정에서 빚어진 것이다. 망국적인 서울중심주의를 타파하지 않고는 서울도 지방도 괴로울 뿐, 우리의 미래는 어둡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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