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위 통과 ‘상생법’서 영업시간 제한 등 핵심 삭제
권고 어겨도 대기업 처벌 못하도록 중기청 손발 묶어
권고 어겨도 대기업 처벌 못하도록 중기청 손발 묶어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골목상권을 삼키는 것을 방어하는 제도적 수단이었던 ‘사업조정신청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려는 입법 시도가 좌초했다.
30일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과 중소상인 모임인 ‘사업조정신청지역 전국연석회의’ 등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 개정안을 국회 상임위인 지식경제위원회가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으나, 법률 체계와 자구를 심사하는 법제사법위원회가 핵심 조항을 삭제해 본회의에 올려 처리했다”며 “법사위가 개정안의 핵심 내용을 훼손하는 월권행위를 했으며, 중소상인들의 유일한 방어 수단이었던 사업조정제도 자체를 무력화할 빌미를 남겼다”고 반발했다. 개정안이 무력화되자 지경위 소속 노영민 의원(민주당)은 이날 동료 의원 31명의 서명을 받아 애초 개정안을 본회의에 바로 상정해 표결에 부쳤으나 부결됐으며, 결국 법사위 안이 통과됐다.
중소상인들은 “법사위의 개정안 훼손으로 대기업이 유통업에서 사업조정 자체를 거부할 구실을 갖게 된데다 중소상인들은 대기업과의 행정소송 부담까지 지게 됐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상생법이 누더기가 된 이유로, 중소상인을 보호하려는 정부의 의지 부족과 대기업의 로비 의혹을 꼽고 있다.
현행 상생법은 사업조정 신청을 통해 대기업 사업 영역을 제한하고 중소기업 생존권을 보호하는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세부 법률 조항은 유통 대기업이 없던 때 제조업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어, 최근 기업형 슈퍼마켓과 관련한 갈등을 조율할 법적 근거로는 미흡했다. 상생법은 중소기업청장이 대기업에 생산품목·생산시설 축소 등을 권고할 수 있도록 했는데, 유통업은 특성상 ‘생산’이란 용어 대신 ‘영업일자·시간 제한’ ‘취급품목 제한’ 등의 용어를 쓰는 게 필요한 탓이다. 하지만 법사위는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 협정에 위배되고 유럽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 추진에 어려움이 생긴다는 외교통상부 등의 의견을 받아들였다”며 ‘영업시간 제한’ ‘취급품목 제한’ 같은 개정안 조항을 삭제했다. 현행법 아래서는 대기업에 대한 ‘생산품목·시설 축소 권고’를 넓게 유추 해석해서 유통업에 적용하는데, 대기업이 법사위 삭제 취지를 앞세워 반발하면 중기청은 손발이 묶일 우려가 있다.
또 법사위는 중소기업청장이 사업 일시정지 권고 이행 명령을 내리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하도록 한 부분도 삭제했다. 대기업들이 권고를 무시하는 사례가 잇따르는데 법 실효성을 높이는 장치는 무력화시켜 버린 셈이다.
조승수 의원은 “국회 지경위가 세계무역기구 협정 위배 논리를 모두 검토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지식경제부 장관도 해당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안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사항을 법사위가 뒤집어버렸다”고 비판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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