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행동하는 양심’, 하워드 진이 1월27일 87살을 일기로 타계했다. 그는 21살 나이에 제2차대전에 참전, 독일 폭격 임무를 맡았다. 그는 항복 직전의 독일군과 민간인들에게 폭격하는 것을 보고 환멸을 느껴 나중에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 등에 반대하는 운동에 앞장섰다. 젊은 나이에 비슷한 폭격 임무를 맡았으면서 상반된 길을 걸은 사람으로 경제학자 월트 로스토(1916~2003)가 있다. 로스토는 케네디, 존슨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북베트남을 폭격하기만 하면 월남전을 이긴다는 생각을 한 북폭론자였다. 따라서 하루 1억달러의 폭탄을 투하했지만 미국은 패전했고, 로스토의 생각은 틀렸음이 입증됐다. 하워드 진이 쓴 역사책은 기존의 역사책과는 많이 달랐다. 그는 역사의 주체를 대통령이나 부자가 아니라 민중(노동자, 농민, 흑인, 여성, 이주민, 인디언 등)으로 보았다. 그가 쓴 <미국민중사>는 지금까지 200만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고 세계 각국에서 번역돼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미국민중사>는 콜럼버스가 아이티에 상륙해서 원주민을 약탈, 학살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항해자이자 발견자로서 콜럼버스와 후대 계승자들의 영웅적 행위를 강조하고 그들이 저지른 인종 말살을 무시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필요한 일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선택이다. 그것은 이미 벌어진 행위를 자기도 모르게 정당화하는 데 이바지한다.” <미국민중사>는 피억압 민중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시각이 독특할 뿐 아니라 그 서술 방법에서 다양한 시, 소설, 편지, 연설을 인용하여 마치 소설을 읽는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1920년대 사형을 당한 무정부주의자 사코와 반제티 사건을 다루면서 사코가 어렵게 배운 영어로 아들 단테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인용한다. “그러니 아들아, 눈물을 흘리는 대신 마음을 굳게 먹고 엄마를 위로해드려라.…엄마와 함께 조용한 시골로 산책하러 나가서 사방에 피운 꽃을 따거라. …하지만 행복하게 노는 중에도 너 자신만을 위해 모든 걸 써서는 안 되고, 네 좋은 친구들인 박해받는 사람들과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걸 항상 잊지 말아라. …이런 인생의 투쟁 가운데 너는 더 많은 걸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또 사랑받게 될 거란다.” 하워드 진은 사코의 편지를 ‘다가올 시대의 수백만 민중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해석한다. 지난해 한국의 용산 참사와 언론 탄압에 항의하는 국제적 서명에 동참했던 하워드 진의 생애 마지막 글은 오바마 대통령의 첫 1년을 평가하는 <네이션>지 기고였다. “미국인들은 지금 오바마의 언변에 현혹되어 있다. 오바마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하는 전국적인 운동이 없다면 그는 평범한 대통령이 될 것이며, 우리 시대에 평범한 대통령이란 위험한 대통령을 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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