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오스트레일리아 퇴직연금 비교
강제퇴직연금제 시행하는 호주
고용주, 급여 9% 연금 적립…시장규모 1천조원
시가총액의 30% 차지…자본시장 발전 이끌어
고용주, 급여 9% 연금 적립…시장규모 1천조원
시가총액의 30% 차지…자본시장 발전 이끌어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여행 가이드로 일하는 이정섭(41)씨. 20년 전 이민을 와 현재 시민권자인 그는 여행사의 정식 직원이 아니라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노후 걱정은 특별히 하지 않는다. 65살이 되면 정부에서 노령연금으로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주는 데다, 고용주가 내는 퇴직연금도 꾸준히 쌓이고 있어서다. 이씨를 고용한 여행사는 급여의 9%를 그의 퇴직연금 계좌에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한다. 이렇게 모인 돈은 이씨가 선택한 금융회사에서 다양한 금융상품에 장기적으로 투자한다. 이씨는 “이곳에서는 내 또래 친구들이 노후를 별로 염려하지 않는다”며 “나도 퇴직연금과 노령연금을 합치면 은퇴 후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퇴직연금 활성화로 고령화에 잘 대비하는 모범 사례로 꼽힌다. 인구가 2100만명에 불과하지만, 퇴직연금 자산 규모는 세계 4위에 오를 정도로 ‘퇴직연금의 왕국’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퇴직연금 시장이 급성장한 것은 기업에게 가입을 의무화한 ‘강제적 보증퇴직연금(Superannuation Guarantee)’ 제도의 시행과 정부의 과감한 세제혜택 때문이다. 1992년 강제 퇴직연금이 도입될 당시에는 고용주가 근로자 급여의 5%를 퇴직연금 계좌에 적립했지만, 이후 단계적으로 기여금 비율이 높아져 2002년부터는 9%를 유지하고 있다. 세제혜택도 만만치 않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근로소득에 대한 최고 세율이 48.5%에 이르지만 퇴직연금소득에는 최저세율인 15%가 적용된다.
1983년에 국내총생산(GDP)의 10% 수준이던 퇴직연금 자산 규모는 강제가입과 세제혜택을 등에 업고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며 2008년에는 국내총생산의 100%를 넘었다. 2009년 말 현재 퇴직연금 전체 자산은 1조1195억오스트레일리아달러(약 1155조원), 퇴직연금 가입자는 15살 이상 인구의 71%인 1162만명이다. 오스트레일리아와 국내총생산 규모가 비슷한 우리나라의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적립금이 14조459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오스트레일리아 퇴직연금 시장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퇴직연금은 오스트레일리아 자본시장 성장의 핵심 연료다. 오스트레일리아 투자·금융서비스협회(IFSA)의 마틴 코르디나 정책담당자는 “지난해 기업의 기여금과 개인이 자발적으로 퇴직연금 계좌에 납입한 금액이 770억오스트레일리아달러”라며 “시장이 회복되면 해마다 1000억오스트레일리아달러의 신규 자금이 꾸준히 들어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풍부한 퇴직연금은 오스트레일리아 자본시장의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다. 지난해 오스트레일리아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30%, 전체 펀드 자산의 3분의 2를 퇴직연금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고령화 추세의 심화로 연금 수령액이 적립액보다 많아지면 퇴직연금 수지가 급격히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투자·금융서비스협회의 존 오쇼네시 부회장은 “2030~40년 정도 되면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며 “현재 9%인 고용주의 기여금 비율을 12%로 올리고, 국외투자 자금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등의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드니/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오스트레일리아 퇴직연금 자산 추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