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북한이 지난해 11월30일 단행한 화폐개혁이 큰 경제혼란을 가져온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 화폐개혁은 해방 후 북한이 실시한 다섯 번째 화폐개혁이다. 이번 화폐개혁에서 신권과 구권의 교환 비율은 100:1이라고 하는데, 이런 것을 화폐 호칭변경(re-denomination)이라고 한다. 구권 화폐를 가져오는 대로 몽땅 신권으로 교환해주는 경우에는 국민들은 큰 불만이 없다. 상품 가격이 일제히 달라지기 때문에 생활에 일시적 불편과 혼란이 있긴 하지만 그런대로 참을 만하다. 문제는 두 번째 방식의 화폐개혁이다. 이는 화폐의 호칭변경과 더불어 신구권 교환에 상한선을 두어 제한하는 경우다. 과거에 소련, 서독 등 여러 나라가 이런 방식을 취했고, 우리나라가 해방 후 취한 두 차례의 화폐개혁도 이 방식을 취했다. 이 방식은 서민들에게는 직접 피해가 없지만 부자들이 소유한 고액 현금, 예금에 대한 교환이 정지되므로 부의 재분배 효과가 나타난다. 그리고 시중의 통화량을 일부 회수하여 인플레이션 압력을 줄이는 효과와 더불어 퇴장되어 있던 일부 자금을 경제개발 용도로 전환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번 북한의 화폐개혁도 신구권 교환에 상한선을 두었다. 애초 상한선은 세대당 10만원이었으나 주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바람에 상한선을 최고 50만원으로 상향조정했다는 설도 있다. 북한에서는 화폐개혁 이후 물가가 폭등하고 쌀과 생필품이 품귀현상을 보인다는 보도가 나온다. 쌀값은 화폐개혁 이후 무려 50~60배 올랐다고 한다. 왜 이렇게 물가가 폭등했을까?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화폐의 호칭을 100:1로 변경하면서 노동자들에게는 과거 받던 임금을 그대로 지급했다는데, 이는 100배의 통화증발과 비슷하므로 물가 앙등이 불가피하다. 둘째, 신구권 교환에 상한을 두는 경우, 고액 현금 소유자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현금을 처분, 양도하려 할 것이므로 광범위한 환물 풍조가 일어나 더욱 물가 앙등을 부추기게 된다. 이런 이유로 화폐개혁을 할 때는 충분한 물자를 비축하여 인플레이션에 대비를 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북한은 오랫동안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해왔고, 사회주의체제는 물자공급이 부족한 것이 특징이다. 헝가리 출신의 경제학자 야노시 코르너이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수요, 공급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경제와 달리 만성적 물자부족에 시달린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사회주의 경제는 곧 ‘물자부족 경제’(shortage economy)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원래 ‘물자부족 경제’인데다가 화폐개혁에서 신구권 교환에 상한을 둠으로써 결정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촉발했는데, 이는 마른 섶에 불을 던진 격이다. 화폐개혁에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