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경제] 아하 그렇구나
기업들, 환율급변 대비해 수출대금 ‘환헤지’ 가입
은행, 계약만큼 달러차입…단기외채 급증 부작용
기업들, 환율급변 대비해 수출대금 ‘환헤지’ 가입
은행, 계약만큼 달러차입…단기외채 급증 부작용
최근 유럽 재정위기에다 한반도 정세의 긴장 고조로 환율과 주가가 급등락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자본유출입에 대한 규제가 약하다 보니, 외국인의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밀려 왔다가 위기 때에는 밀물처럼 빠져나가 국내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는 행태가 이번에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부도 급격한 자본 유출입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마련에 나섰습니다. 정부는 우선 외환시장 교란과 단기외채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돼온 선물환 거래를 줄일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말 기업들의 선물환 거래 규모를 실물 거래의 125%로 제한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선물환 거래의 또다른 주체인 은행이 규제 대상입니다.
선물환은 미래 특정 시점의 환율을 미리 정해 놓고 외환을 사고파는 거래입니다.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기 위해 수출입업체의 무역거래나 국제 단기투자에서 재정거래(금리차를 이용한 무위험 차익거래) 등에 주로 이용됩니다. 이처럼 위험 회피가 목적인 선물환 거래가 어떤 부작용을 끼쳤기에 정부가 규제의 칼을 빼들려고 하는 것일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2004년 이후 급증한 국내 조선업체의 선물환 거래를 살펴봐야 합니다. 당시 원-달러 환율 하락세가 이어지자 수출업체들은 나중에 받을 수출대금을 미리 일정한 환율에 파는 선물환 매도에 적극 나섭니다. 특히 조선업체들은 엄청난 수주 호황이 이어지는데다, 신규 수주부터 선박 인도까지 2~3년 걸쳐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이 차례대로 들어오는 업종의 특성상 선물환 매도 수요가 많았습니다. 조선업체의 선물환 순매도액이 가장 많았던 2007년에는 규모가 533억달러로 그해 경상수지 흑자액(59억달러)의 거의 열 배에 달했습니다. 조선업체의 선물환 매도는 은행이 받아줍니다. 그런데 조선업체로부터 선물환을 매수한 은행은 자신의 환위험을 피하기 위해 같은 액수의 달러를 국외에서 빌려오거나 국내 스와프시장을 통해 차입한 뒤, 다시 이를 원화로 환전해 대출이나 채권 투자 등으로 운용했습니다. 이후 은행은 선물환 거래 만기 때 조선업체로부터 달러를 받아 다시 빌린 달러를 상환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가 일어납니다. 우선 빌린 달러를 은행이 외환시장에서 환전함으로써, 달러 공급이 늘어나 원-달러 환율의 하락을 부추기게 됩니다. 환율 하락에 대비해 선물환을 매도했는데, 이게 오히려 환율 하락을 더 가속화시키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선물환을 매수한 은행의 단기외채가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실제 2005년 말 650억달러였던 국내 은행권의 단기외채는 조선업체 선물환 매도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2007년 말 1600억달러로 급증했습니다. 특히 은행들이 달러를 차입할 때 이자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선물환의 만기와 일치시키지 않고 훨씬 단기로 빌려오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됐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목격한 바와 같이, 단기외채가 급증한 상황에서 신용경색이 발생하면 국가부도 위기로까지 몰릴 수 있습니다. 또 선물환 매도는 미래에 들어올 달러를 미리 당겨 써 버린 것이므로, 나중에 수출업체가 수출대금을 받더라도 곧바로 국외로 빠져나가게 됩니다. 따라서 경상수지와 자본계정의 흑자가 충분하지 않으면 과도한 선물환 거래는 환율 급등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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