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직원들의 협의체인 ‘영보드’ 멤버들이 27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성수동 유니베라 본사 식당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연, 김용빈, 김경미, 정현정, 지선화, 최유진, 서성봉 씨.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유니베라 ‘영보드’ 이사회, 샘표식품 ‘육해공프로젝트’
즐거운 일터 만들기 노력 “새 기업 문화로 정착중”
즐거운 일터 만들기 노력 “새 기업 문화로 정착중”
‘과장 이하 사원들만 참여할 수 있음.’
건강식품업체인 유니베라에는 이런 자격 요건을 갖춘 특별한 ‘이사회’가 있다. 지난 27일 서울 성동구 유니베라 본사에서 만난 그 이사회 참석자들은 역시 풋풋했다. 입사한 지 2년이 채 안된 이사도 있다. 임원들이 참여하는 정식 이사회와 달리, 회사의 젊은 사원들만 모이는‘영보드’의 주인공들이다. 이들 역시 회사의 앞날을 함께 고민하지만, 그 내용은 사뭇 다르다.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가꿀 것인지를 놓고 머리를 맞댄다.
즐거운 일터 만들기를 뜻하는‘펀 경영’이 국내 기업에서 시작된 지 대략 10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주로 최고경영자의 제안으로 시작돼, 기업의 홍보성 이벤트에 머물렀다. 하지만 10여년 숙성기를 거치면서 ‘아래로부터’, ‘지속가능한 ’펀 경영으로 진화하고 있다.
■ 아래로부터… “(경영진도) 즐거운 일터 가꾸기에 많이 노력했죠. 하지만 사원들 의견을 모아 우리들이 주도한 즐거운 일터 만들기는 조금 다른 방식이죠.” 유니베라 영보드 의장인 김용빈씨는 이렇게 말했다. 회사는 임직원이 함께 하는 ‘맥주 파티’등을 지난 2007년까진 일과가 끝난 뒤 옥상에서 열었다. 하지만 영보드가 ‘제대로 놀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려, 2008년부터는 해마다‘해피 데이’를 정해 회사 사무실 안으로 놀이터를 옮겼다. 모두 일상 업무에서 벗어나는 게 원칙인데 슬금슬금 일하는 직원들 때문에 2009년에는 모두 밖으로 내몰았다. ‘회사 안’에서는 제대로 놀 수 없어서 ‘회사 밖’에서 해피데이를 진행한 것이다. 영보드의 다른 이사인 정현정씨는 “ 영보드들이 1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며 건강식품을 회사 동료들한테 직접 배달해주는 프로젝트도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처럼 아래로부터의 즐거운 일터 만들기는 직원들의 소소한 행복과 건강까지 챙긴다.
■ 꾸준하게… 샘표식품도 펀 경영의 일환으로 ‘행복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지난 14일부터 가동하기 시작했다. 단 며칠간 프로그램이 아니다. 지난해 시작한 ‘임직원 기살리기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이다. 이 프로젝트는 3년짜리 프로젝트다. 샘표 인사팀의 정철우 과장은 “일회성 이벤트로 추진하는 게 아니다”며 “임직원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까지 아우르는 펀 경영”이라고 설명했다. 샘표에서 임직원 기살리기 프로젝트의 다른 별칭은 ‘육해공 프로젝트’다. 육상·수상·항공 레저로 팀원들이 공동체 의식을 갖도록 한다. 사원 교육의 한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강의실에 몰아넣지 않는다. 정 과장은 “직원 교육은 복지의 일환”이라며 “레저 등을 통해 공동체험을 하고, 이를 교육과 연계시키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샘표는 팀원끼리 단합을 위해 ‘펀 데이’도 운영중이다. 역시 근무시간을 비워, 잘 놀아야 한다. 잘 놀아야지, 우수 팀에 뽑혀 상품권이나 복지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
■ 펀 경영 디엔에이(DNA)를 기업문화로 펀 경영을 추구하는 경영자들의 생각은 구성원 전체의 몸과 마음에 녹아들어 기업문화로 굳어지기도 한다. 전자제품 유통업체인 하이마트가 그 예다. 올해로 창립 10돌을 맞은 이 회사는 10년째 펀 경영 중이다. 이 회사에서는 ‘오전에는 절대 혼내지 않아야’하고, 모든 직원들은 출근과 동시에 춤추듯 하는‘하이팅 체조’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최고경영자인 선종구 대표의 의지로 시작된 펀 경영이지만, 이제는 인사팀 내에 펀 경영 담당자 3명이 끊임없이 ‘즐거운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개발해 직접 진행한다. 펀 경영을 제도화 한 셈이다. 가령 각 지점에서 정기휴무일에 직원들이 등산을 가겠다고 하면 회사는 비용을 다 댄다. 인사팀 이인국 차장은 “펀 경영은 대표이사의 의지가 반영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 회사 운영 전반으로 뿌리내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펀(Fun) 경영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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