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물가지수 추이
수백억 과징금 부과 예상
업계 “특수성 무시” 반발
낙농민에 피해 전가 우려
업계 “특수성 무시” 반발
낙농민에 피해 전가 우려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짬짜미) 혐의를 두고 우유업계를 정조준하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가 ‘친서민’ 정책 기조를 강조하면서 공정위 담합 조사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우유 가격 인상은 또다른 사회적 약자인 낙농가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논란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18일 “우유업체들의 가격담합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한 조사가 막바지에 이르러 가급적 이른 시일 안에 조사결과가 확정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유업계 안팎에선 많게는 수백억원대의 과징금이 부과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공정위는 서울우유와 남양유업, 매일유업 등 우유업체 빅3를 중심으로 담합 여부를 다각도로 조사해왔다. 우유값 인상과 덤 끼워주기 중단 과정에서 담합 행위가 있었는 지가 핵심 조사 내용이다.
현재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에서 판매하는 우유값은 1ℓ를 기준으로 평균 2100~2200원선이다. 2008년 8월 우유업계가 일제히 제품 가격을 17~18% 가량 올리면서 형성된 가격대다. 공정위는 이 과정에서 담합이 있었다고 보고 있으며, 과징금 감면 혜택을 전제로 특정 업체로부터 담합 자진신고도 받아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유업계는 2008년 7월 낙농가에서 납품하는 원유(가공 전 우유)값이 종전보다 20.5% 인상되면서 소비자가격이 비슷한 시점에 올라간 것이라고 항변한다. 실제로 원유 가격은 정부, 낙농가, 소비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사실상의 공적기구인 낙농진흥회에서 일괄 결정한다. 2008년 원유 가격 인상은 외환위기로 환율이 폭등하고 사료값도 뛰어올라 낙농가의 아우성이 커지자 낙농진흥회가 4년만에 인상을 결정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위가 우유값 담합 제재를 서두르는 것은 최근 정부의 물가안정 대책과 관련이 깊다. 우유는 이른바 ‘엠비(MB)물가’로 불리우는 52개 주요 생필품 가운데 물가 지수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5년을 100으로 본 우유의 물가지수는 지난 2분기(4~6월)에 139.9를 기록했다. 지난 2008년 상반기엔 104 수준이었지만 우유값이 오른 그 해 하반기 이후로는 140선으로 치솟았다. 정부는 우유를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가격이 비싼 품목으로 여기고 있다. 이 때문에 우유는 올해 미국 등 11개국과의 가격차를 조사하기로 한 30개 품목에도 포함됐다.
하지만 우유업계와 낙농가는 정부가 최근 ‘친서민’ 기조를 앞세우려다 국내 낙농업의 특수한 구조와 생존 여건을 무시하고 ‘물가 잣대’만 무리하게 들이대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국내 낙농가는 소에게 먹일 사료의 90%를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라 원유 값이 국제가격과 비교해 비쌀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가공식품 원료로 쓰이는 탈지분유는 낙농진흥회가 일괄 결정한 가격으로 원유를 사들여 국내 제조사가 생산할 경우 생산비의 절반밖에 건지지 못한다. 낙농 선진국들에서 들여오는 수입 탈지분유가 워낙 싸서 가격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우유 가격은 단순히 물가 시선으로 바라볼 게 아니라 국내 낙농업의 특수한 사정과 생존 여건을 감안해 평가해야 한다”며 “우유 가격 구조에서 원유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이르는 등 부가가치가 크지 않은 산업인 점도 고려해달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우유 시장은 서울우유가 시장점유율 37%로 1위를 차지하고, 매일유업과 남양유업이 각각 15%로 2, 3위를 다툰다. 특히 서울우유는 수도권 인근 낙농가들이 구성한 협동조합 회사다. 회사 자체가 이윤을 내는 것보다 협동조합 회원인 낙농가의 생존 시스템을 선순환시키는 게 더 주요한 경영목적이다.
예컨대 여름철은 방학을 맞은 학교들이 우유급식을 중단하기 때문에 우유업체가 생산량을 대폭 감축해야 하는 비수기로, 이윤을 추구하는 주식회사라면 원유를 사들일 이유가 없다. 하지만 협동조합 회사인 서울우유는 낙농가가 비수기라고 해서 젖소를 도살하거나 사료를 안 먹일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원유를 사들여 손실을 감수하고 탈지분유를 생산한다. 이런 비용 등이 우유 가격 결정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낙농육우협회는 지난 6월30일 낙농 농민 5000명의 서명을 담은 탄원서를 공정위에 제출했다. 우유업계가 과징금을 받게 되면 업계가 낙농가와의 거래물량을 줄이는 방법으로 낙농민들에게 부담이 옮겨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서 농림수산식품부도 “(불공정행위 조사에서) 일반 제조업과 낙농업을 동일한 잣대로 판단해선 안된다”는 견해를 공정위에 전달한 바 있다.
황보연 정세라 김성환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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