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 회장, 16세 아들에
고의실권·제3자배정 방식
주요 자회사 지분 헐값 넘겨”
회사쪽 “법적 검토 끝난 문제”
고의실권·제3자배정 방식
주요 자회사 지분 헐값 넘겨”
회사쪽 “법적 검토 끝난 문제”
이른바 ‘장하성 펀드’로 불리는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로부터 지배구조 개선 요구를 받아온 태광그룹이 대주주 일가의 편법 증여 의혹으로 얼룩지고 있다. 이호진(48) 그룹 회장이 미국유학중인 외아들 현준(16)군에게 간접적으로 주요 계열사 지분을 한꺼번에 넘긴 사실이 드러난 까닭이다. 비상장 자회사 지분을 헐값에 넘기거나 내부자 거래로 오너 가족회사에 이익을 몰아준 사례도 있다. 태광그룹에서 벌어진 이런 행태는 기존 거대 재벌그룹의 편법 상속·증여 과정을 빼닮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자회사 지분 헐값에 넘겨주기 태광산업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서울인베스트(대표 박윤배)는 12일 주요 계열사 공시 자료를 분석해 여러 의혹을 제기했다. 이 회장과 아들 간의 재산 물려주기의 고리는 티시스(옛 태광시스템즈), 티알엠(옛 태광리얼코), 한국도서보급 등 태광그룹의 3대 비상장 자회사다. 3곳 모두 이 회장이 51%, 현준군이 49%의 지분을 갖고 있는 개인회사다.
현준군은 2006년 초등학교 6학년 때 제3자 배정 방식으로 티시스 지분을 넘겨받았다. 티시스는 이 회장이 100% 출자한 개인회사였는데, 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통해 현준군이 49%의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계열사 지분 이동을 통한 전형적인 변칙 증여에 해당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당시 이 회사 주식을 평가하면 주당 20만원이 넘었는데, 현준군은 주당 1만8955원에 9600주를 넘겨받았다. 재벌들이 많이 써먹는 주식 헐값 발행을 통한 증여 수법이다.
현준군은 같은해 2월 티알엠 유상증자에도 참여해 역시 지분 49%의 2대주주가 된다. 이 회장은 티알엠과 티시스 유상증자 직전인 2006년 1월 자신과 아들 현준군이 대주주로 있는 한국도서보급으로부터 11억원을 빌리는 등 계열사 돈으로 증자에 참여한 것으로 의심된다. 같은 해 4월에는 한국도서보급이 티시스에 18억원을 빌려줬고 이후 티시스는 유·무상증자를 거쳐 그룹의 2대 모기업인 대한화섬 주식 약 2만주(13억원 상당)를 사들였다.
지난달 13일에는 그룹 모기업인 태광산업이 대한화섬 지분 16.74%를 한국도서보급에 팔아 1대주주 자리를 넘겨주면서, 현행 상속·증여세법이 규정한 ‘매각대금의 30%’에 해당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지 않았다. 이 회장이 태광산업의 대주주(15.14%)이기는 하지만, 비상장 회사이자 가족기업인 한국도서보급에 대한화섬의 1대주주 자리를 넘기는 게 이 회장 가족에게 유리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화섬 지분을 넘길 때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았으면 태광산업은 약 45억원을 더 챙길 수 있었다.
■ 계열사 자산 빼돌리기 의혹도 태광산업과 계열사들은 지난 2008년 이 회장 가족이 거느린 기업인 동림관광개발이 강원도 춘천에 골프장을 짓고 있는데 회원권 792억원(2008년 12월31일 가치 기준)어치를 매입했다. 태광 계열사의 평균 회원권 매입가격은 22억원으로, 당시 수도권의 유명 골프장 회원권 시세(10억원 안팎)보다 훨씬 비싸다. 그것도 골프장을 완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원권을 산 것이어서, 계열사들이 사실상 오너 가족회사한테 골프장 건설자금을 지원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편, 태광산업이 2009년 12월23일 흥국화재 지분을 흥국생명에 넘긴 과정을 두고서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당시 태광산업은 흥국화재 주식 1933만1000주(지분 37.6%)를 이 회장과 특수관계인들이 74%의 지분을 가진 흥국생명에 시장가격인 1217억8530만원(주당 6300원)에 매도했다. 역시 경영권 프리미엄에 해당하는 365억원가량의 재산손해를 태광산업에 준 것이다. 태광산업은 이 지분을 매각하기 전까지 유상증자 등의 방식으로 2107억원을 투자했다.
이에 대해 태광그룹 쪽은 “이미 법적인 검토가 끝난 문제들이며 서울인베스트가 제기한 의혹에는 일체 대응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서울인베스트는 구조조정 및 인수합병 전문기업으로, 약 3%의 지분을 보유한 태광산업 소액주주를 대표하고 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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