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노조와 대화 거부, ‘최고가 매각’ 가능성 높아
현대차·현대그룹 과욕땐 고용불안 등 후유증 우려
“시너지 효과·비전 살펴야”
현대차·현대그룹 과욕땐 고용불안 등 후유증 우려
“시너지 효과·비전 살펴야”
현대건설의 대주주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그룹의 여론전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11월12일 최종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될 때까지 양쪽 공세는 더 거세질 전망이다. 하지만 정작 기업의 운명이 걸려 있는 현대건설 내부의 목소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현대건설의 한 직원은 “10년 동안 사막에서 고생하고 국내 시공능력 1위 건설사로 키워낸 게 누군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 누구를 위한 매각 기준? 이달 초 현대건설 채권단이 지분 매각 공고를 낸 뒤 현대건설 노동조합은 채권단 대표인 한국정책금융공사와 외환은행 쪽에 대화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대건설 임직원들의 공개적인 의견은, 노조가 한 종합일간지에 낸 ‘현대건설 인수·합병(M&A)에 대한 7000 현대건설 가족의 입장’이라는 광고가 전부였다. 여기서 현대건설 직원들이 밝힌 요구사항의 뼈대는 ‘무조건적인 고가 기준으로 매각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현대건설 직원들의 가장 큰 우려는 대우건설 전철을 밟는 것이다. 대우건설이 무리하게 외부 자금을 끌어들인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됐다가, 회사의 알짜 자산을 처분하고 다시 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과정을 지켜본 탓이다. 대우건설의 한 관계자는 “금호그룹이 수년 동안 운영하면서 기업가치가 낮아진 게 가장 뼈아프다”며 “채권단이 현대건설 지분 매각에서도 경쟁을 부추겨 비싼 값에 팔려고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채권단이 최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기준을 확정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선 결국 ‘가격’에 좌우될 수밖에 없을 걸로 내다보고 있다. 과거 대우자동차나 쌍용자동차, 대우건설 매각에 비춰봐도 재무건전성, 인수 후 경영계획, 고용안정성 등 비가격 부문의 배점은 100점 만점에 25~35점밖에 되지 않았다. 여기서 인수 후보기업간 점수차는 크게 벌어지지 않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비자금 조성, 횡령 등의 감점 폭을 늘리는 등 인수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가중치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투자금 회수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채권단으로서는 더 많은 매각차익을 챙기면서도 공정성 논란을 피해갈 수도 있는 ‘최고가 매각’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이 “(현대건설 매각에서) 가격이 3분의 2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상황을 뒷받침한다.
문제는 이런 고가 매각 뒤에 벌어질 후유증은 고스란히 현대건설의 몫이라는 점이다. 지나친 웃돈을 주고 기업을 인수한 쪽에선 자산 매각이나 비용절감을 위한 인력 구조조정 같은 과정을 밟아나가기 마련이다.
■ 현대건설 주인감은? 그렇다면 가격 외에 어떤 점이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까? 현대건설의 한 간부는 “우리는 ‘한국 건설업계의 상징’이란 자부심이 강한 조직”이라며 “지금보다 질적, 양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회사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시너지 효과나 중장기 비전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현대건설은 올해 국외에서 약 120억달러어치 공사를 따내고, 시공능력 평가에서 2년째 1위를 차지한 국내 최고의 건설사다. 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술력은 세계시장에서도 우수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이런 시공·설계 능력은 직원 개개인의 오랜 경험으로 축적돼, 조직적으로 체화된 힘이다. 그만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가치’가 현대건설의 핵심 자산이라는 얘기다.
현대차그룹은 2020년까지 현대건설을 수주 120조원, 매출 55조원으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지난 19일 밝혔다. 하지만 외형적 목표만 제시했을 뿐 세부 이행방안은 구체적이지 않다.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현대건설을 그룹 경영권 승계의 지렛대로 이용하지 않겠느냐는 일부 우려도 있다. 현대건설을 ‘글로벌 톱 5’로 육성하겠다는 현대그룹의 경우엔, 전략적 투자자로 끌어들인 독일의 엔지니어링 회사인 엠플러스더블유(M+W)그룹의 ‘몸집’이 그다지 크지 않은 게 약점으로 꼽힌다.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불안정한 상황에선 대북사업과 시너지도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고용안정과 조직문화도 현대건설 구성원들에겐 중요한 판단요소다. 업계에선 어느 쪽으로 넘어가든 현대건설 인수 뒤 대폭 물갈이를 당연한 순서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건설의 한 임원은 “오너가 경영간섭을 많이 하고, 회사 내부에 출신기업이나 인맥 등으로 ‘인의 장막’을 치는 분위기는 우리와 너무 다르다”며 이질적인 조직문화를 걱정했다. 고 정주영 회장 때부터 유지해왔던 전문경영인 체제 보장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다.
현대건설은 국책은행과 공적자금을 투입받은 시중은행들이 공동으로 살려낸 ‘국민기업’이다. 현대건설 매각이 현대차와 현대그룹, 채권단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임동진 현대건설 노조위원장은 “현대건설 경영정상화의 결실은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현대건설은 국책은행과 공적자금을 투입받은 시중은행들이 공동으로 살려낸 ‘국민기업’이다. 현대건설 매각이 현대차와 현대그룹, 채권단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임동진 현대건설 노조위원장은 “현대건설 경영정상화의 결실은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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