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사람 이름으로 만든 계좌
비자금 ‘창구’거래 당사자도 처벌토록 실명제법 개정 추진
비자금 ‘창구’거래 당사자도 처벌토록 실명제법 개정 추진
최근 차명계좌라는 용어가 언론 지상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신한금융지주의 내분이 시작된 단초가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차명계좌였고, 태광그룹의 비자금 사건에서도 차명계좌가 이용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가명계좌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의 이름으로 금융거래를 하는 것이고, 차명계좌는 본인의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만든 금융계좌를 말합니다. 가명계좌는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원천적으로 사라졌습니다만, 차명계좌는 은행뿐 아니라 증권, 보험 등 모든 금융업종에서 여전히 활개치고 있습니다. 예컨대, 철수가 자기 명의로 계좌를 만드는데 돈의 실소유주는 영희인 경우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철수와 영희가 짜고 차명 거래를 하는 것인데, 둘 사이에 소유권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 한 밝혀내기 어렵다는 난점이 있습니다. 노숙자 등의 명의를 도용하는 이른바 ‘대포통장’도 차명계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융소득 종합과세가 실시되면서 차명계좌를 상당 부분 줄였다고는 하나 아직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저축을 장려한다는 미명 아래 가명이나 차명 혹은 무기명에 의한 금융거래를 허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지하경제의 폐해가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82년에 일어난 이철희·장영자 사기 사건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정부는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지만 경제에 충격을 준다는 반대론에 밀려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다 93년 김영삼 대통령이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동해 ‘금융실명제 및 비밀보장을 위한 법률’을 실시합니다. 당시에는 금융혁명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파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법은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비실명 자산을 거래한 당사자를 처벌하는 대신, 금융회사 직원에게 실명 확인 의무를 지운 것입니다. 이는 당시 시중 유통자금의 10%나 되는 것으로 추정됐던 지하자금을 충격 없이 양성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입니다.
이제 정부도 가만히 있기 어렵게 됐습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사회 투명성을 높여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태의 차명계좌나 변칙 거래도 근절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차명계좌를 뿌리뽑기 위해 금융실명제법을 손질하고 증여로 의심되는 차명계좌에 대해 상속·증여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겁니다. 현재 의원입법으로 국회에 제출돼 있는 금융실명제법 개정안들도 모두 차명거래자를 직접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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