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자기자본 한도 예외 인정하며 유상증자 승인
국회승인 우회하기 위한 조처…“손쉬운 관치” 비판
국회승인 우회하기 위한 조처…“손쉬운 관치” 비판
산업은행이 대우건설 인수와 동시에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하기로 한 것에 대해 사실상의 ‘유사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지적과 함께 정부가 민영화하기로 한 산은을 여전히 관치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3일 금융위원회와 산업은행의 말을 종합하면, 금융위는 최근 전체 회의를 열어 산업은행이 대우건설에 1조원의 유상증자를 할 수 있도록 예외 투자한도를 승인했다. 산은은 한국산업은행법 및 시행령에 따라 자회사 출자 총액이 자기자본의 20%(3조원가량)를 넘을 수 없는데, 이미 그 한도가 다 차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제를 어기면서까지 대우건설을 지원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정부가 모든 책임을 산업은행에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은행은 이달 안에 사모투자펀드(PEF) 방식으로 대우건설의 재무적 투자자들로부터 대우건설 지분 39.58%(2조원가량)를 사들일 예정이다. 매입 예정 가격은 주당 1만8000원인데, 현재 주식시장에서의 거래 가격은 1만1000원에 불과하다.
이렇게 할 거면 산은금융지주와 정책금융공사를 왜 분리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우건설 지원이 정부의 기업구조조정 정책상 필요하다면 산은이 아니라 정책금융공사가 맡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은 민영화의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서둘러 정책금융공사를 만들어 놓으니, 두 기관의 중복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산은의 대우건설 유상증자는 국회 승인이 불필요한 유사 공적자금”이라며 “정부가 이렇게 산은을 손쉬운 관치 수단으로 활용하다가는 글로벌 투자은행은커녕 민영화도 어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은행을 누가 수조원씩이나 주고 인수하겠느냐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지금 산은의 사례는 ‘관치의 늘어진 팔’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산은이 금호그룹의 주거래은행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지 기업구조조정 책임을 떠넘기는 건 아니다”라며 “다만 산은과 정책금융공사의 기능을 정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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