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설명) 채권 금융회사들이 공동운영하는 신용회복위원회에 신용회복 지원프로그램을 신청하는 신용불량자들이 계속 늘고 있으나 실질적인 지원 내용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가양동 신용회복위원회의 상담 창구에 신청자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 자산관리공사 제공 “채무자 이해보다 추심 편의” 비판
배드뱅크 들어가도 빚내어 빚갚아
생계형 신불자 공적지원 모색해야
신용불량자들에게는 크게 두가지 탈출구가 있다. 하나는 채권금융회사의 워크아웃이나 자산관리공사에서 위탁운용하고 있는 배드뱅크 등 사적 신용회복 지원절차이고, 또 다른 길은 법원의 파산절차를 통한 공적 지원절차이다. 법원 절차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드는 만큼 사적 지원절차에 의존하는 신용불량자들이 많다. 그러나 사적 지원절차에는 채무자들의 이해보다는 사실상 채권금융회사들의 ‘편의’가 더 많이 묻어 있다. 채무자에게 추심 압박이나 고금리 부담, 단기상환 부담 등을 조금 덜어주는 정도이지 빚 원금은 그대로 남는다. 채권 금융회사로서는 소재가 잘 파악되지 않는 채무자들을 한군데 모아 좀더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편의가 있다. 이 때문에 신용불량자들 사이에는 배드뱅크 등의 사적 지원제도가 ‘부활 프로그램’이 아니라 ‘자수 프로그램’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재정경제부가 지난해 전국 신용불량자들을 상대로 표본조사한 바로는 신용불량자들의 월평균 소득이 110만원이고 평균 빚은 4천만원이 넘는다.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돈을 벌어 빚만 갚더라도 최소 4년이 걸린다. 인천에서 학원강사를 하는 이아무개(여·38)씨는 지난해 3월 신용회복위원회에 개인 워크아웃을 신청했다가 최근 인천지법에 다시 파산신청을 했다. “처음에는 카드회사들의 빚독촉에 시달리지 않아 워크아웃 프로그램을 고맙게 생각했는데 달마다 58만원씩 뜯어가니까 도저히 생활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신용회복 지원프로그램에 들어가더라도 빚을 내서 빚을 갚아야 하는 생활이 지속됐다.”
|
||||
홍종학 경원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신용불량자들은 소득수준을 감안할 때 구조적으로 평생 빚을 지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라며 “배드뱅크나 개인 워크아웃은 처음부터 편법이고 도저히 해답이 될 수 없는 방안이었다”고 혹평했다. 경제활동인구의 20% 가량이 신용불량자가 되어 버린 현실의 책임을 전부 채무자들에게만 돌릴 순 없다. 상환능력도 검증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나 이런 현실을 방치한 정부의 책임도 크다. 홍 교수는 “미국에서는 30년대 중반부터 원금탕감을 통한 신용회복지원제도가 정착되어 있다”면서 “원금탕감 얘기만 꺼내면 ‘시장원리’이니 ‘도덕적 해이’니 하는 사람들은 사실 선진신용사회를 제대로 구현해 보지도 못한 채 채권자들의 이해에만 매몰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신용불량자들이 실질적으로 회생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내수부진과 장기불황, 또 다른 신용불량자들의 양산이라는 악순환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신용불량자라는 용어는 지난 4월 28일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대신 개별 금융회사별 채무자 연체정보(50만원 이상 3개월)가 은행연합회에 모아져 관리되고 있다. 이 때문에 공식적인 신용불량자수도 ‘2005년 3월 말 현재 360만명선’에서 딱 끊겼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용어를 없앴다고 신용불량자가 사라질 수 있겠느냐”며 “정부는 연체자 총수를 공개하고 이를 근거로 서민들의 신용회복 지원방안을 실질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