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MOU 관련 ‘주거래 은행 청산’ 압력설도
외환 “현대그룹, 7일까지 자료 제출하라” 태도 돌변
외환 “현대그룹, 7일까지 자료 제출하라” 태도 돌변
현대건설 인수를 둘러싸고 현대그룹과 대립해온 현대자동차그룹이 1일 현대그룹과 양해각서(MOU)를 맺은 외환은행의 계좌에서 1조원이 넘는 예금을 인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오후 외환은행은 예정에 없던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자금조달 증빙자료 제출과 불응 시 중도 탈락 가능성을 언급하며 현대그룹을 강하게 압박했다.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예비협상대상자로 밀려난 현대차그룹이 거액의 예금 인출을 앞세워 주거래은행을 압박한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 현대차그룹 1조원대 인출에 외환은행 ‘화들짝’ 현대건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1일 서울 을지로 본점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현대그룹에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의 나틱시스은행 예금 1조2000억원과 관련한 대출 계약서를 오는 7일까지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김효상 외환은행 여신관리본부장은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자금 증빙 자료 제출 요구에 불응하거나 자금조달에 불법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주주협의회의 80% 이상 의결을 거쳐 양해각서를 해지할 것”이라며 “이 경우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자동차와의 양해각서 체결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외환은행의 태도 돌변은 이날 오전부터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외환은행 계좌에서 무더기로 예금을 인출한 것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외환은행은 현대차그룹의 주거래은행이다. 이와 관련해 외환은행은 “현대기아차그룹 계열에서 1조원대의 예금 인출이 있었다”고 확인했다. 익명을 요구한 외환은행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외환은행의 현대건설 매각이 문제가 있다며 주거래은행 관계를 끊겠다고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대차그룹이 주거래은행을 옮기면 외환은행은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 당국은 현대차그룹이 주도하는 범현대가 기업들이 외환은행 계좌에서 모두 1조5000억원대를 인출한 것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은 “기업이 은행에 돈을 넣고 빼는거야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 아니냐”며 “(인출한 금액은) 통상적인 거래 수준”이라고 밝혔다. 외환은행은 “범현대가 기업들의 예금인출 공식 요구는 없었으며, 외환은행은 현재 유동성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 궁지에 몰린 현대그룹 이날 정책금융공사는 현대그룹의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한 동양종금증권의 풋백옵션 투자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압박 공세를 이어갔다. 공사 쪽은 금융당국에 사실 확인을 의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사는 “만약 동양종금증권이 요구한 인수금액의 상한선이 현대그룹이 제시한 입찰금액보다 낮았음에도 현대그룹이 금액을 자의적으로 높였다면 재무적 투자자의 지위가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궁지에 몰리고 있는 현대그룹은 “적법하게 체결한 엠오유 효력을 부인하는 현대차그룹의 끊임없는 이의 제기에 대해 다시 한번 채권단에 현대차그룹의 예비협상대상자 자격을 박탈할 것을 촉구하며,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법원에 ‘이의제기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채권단의 요구에 대해서는 “지금으로선 입장을 밝힐 게 없다”면서도 내부적으로 법률 검토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그룹은 정책금융공사가 동양종금증권의 투자조건에 대해 금융당국에 사실확인을 의뢰할 계획이라는 발표에 대해서는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유재한 사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은 “김효상 외환은행 여신관리본부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동양종금 자금과 관련해선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밝혔고, 유재한 사장 자신도 지난 11월24일 국회 정무위에 출석해 동양종금은 풋백옵션이 있다고 판단해, 타인자금으로 보고 감점 처리까지 해 문제가 없다고 해놓고 지금에 와서 이러한 입장을 번복하는 것은 자신이 내린 평가를 스스로 뒤집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은 “유 사장이 이렇게 계속해서 의혹 키우기에 앞장서는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비난했다.
현대건설을 거의 품에 안은 듯했던 현대그룹과 ‘1차전’에서 밀려난 현대차그룹의 다툼이 소송전으로 번진 가운데 현대그룹과 엠오유를 맺었던 외환은행이 갑자기 현대그룹을 압박하는 쪽으로 돌아서면서 현대건설 인수전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혁준 최혜정 황예랑 기자 jun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