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 깬 ‘보이지 않는 손’에 분노…현대상선 지분 거절
채권단 배임·현대차 입찰규정 위반 법정에서 따질 듯
채권단 배임·현대차 입찰규정 위반 법정에서 따질 듯
“모든 게 현대자동차로 현대건설을 넘기기 위한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현대건설 채권단이 현대그룹 순환출자 고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현대건설의 현대상선 지분 8.3%를 ‘당근’으로 제시했지만, 21일 현대그룹 쪽은 “검토할 가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채권단이 현대차와 매각협상에 나서면, 현대그룹은 채권단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하고 현대차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무효화하는 소송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그룹이 강경하게 나오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번 인수전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했다고 의심해서다. 채권단이 현대차에 특혜를 주려 했고, 현대차가 결정적인 구실을 해 매각판 자체가 흔들렸다는 것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때 1점차로 승패가 갈렸다는데 우리가 입찰가를 100억원만 덜 써냈어도 졌을 정도로 채권단이 불공정한 평가기준을 마련했다”며 “처음부터 현대차에 주려다 안되니 뒤늦게 판을 뒤집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차에 대한 감정도 최악으로 치달은 상태다. 현대그룹은 현대차의 예비협상대상자 지위 박탈을 주장해왔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에도 현대차가 채권단, 정치권, 언론을 상대로 각종 의혹을 퍼뜨려 입찰규정상 ‘이의제기 금지’ 조항을 어겼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예금을 대거 인출하고 간부들을 상대로 민형사소송을 제기하겠다며 채권단 매각주간사인 외환은행을 압박한 것도 현대그룹은 입찰규정 위반으로 문제삼을 전망이다.
이 때문에 채권단이 ‘당근’으로 내놓은 현대상선 지분은 현대그룹의 반발을 무마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채권단이 중재안으로 내놓은 것처럼 현대상선 지분을 시장에 분산매각하거나 국민연금 등에 매각할 가능성도 불확실하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채권단은 현대차한테 현대상선 지분을 어떻게 처리하라고 강제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채권단이 현대상선 지분의 시장가격(4400억원가량)에 해당하는 인수자금을 깎아주는 식으로 ‘딜’을 시도해볼 수는 있겠지만, 현대차가 이를 받아들일지 여부도 미지수인데다 매각 원칙에 어긋난다는 논란을 감수해야 한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