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아웃 1년 현주소
현대건설 매각 관련 거론
M&A 실패작 입방아 올라
계열사들 실적 향상에도
‘조기졸업’ 점치기엔 일러
현대건설 매각 관련 거론
M&A 실패작 입방아 올라
계열사들 실적 향상에도
‘조기졸업’ 점치기엔 일러
“이번 현대건설 매각 논란의 가장 큰 피해자는 금호그룹이다. 걸핏하면 현대그룹이 금호처럼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고 하니, 금호 사람들 마음이 어떻겠냐?” 최근 만난 ‘범현대가’ 기업 임원의 말이다. 지금 재계나 금융권에선 ‘승자의 저주’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대우건설을 무리하게 인수해 위기에 빠진 금호그룹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는 우려가 팽배한 탓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간 지 30일로 꼭 1년이 된다. 금호그룹은 특별한 행사 없이 연말을 차분히 마무리할 예정이다. 하지만 속내가 편하지만은 않다. 최근 금호그룹은 대우건설에 이어 대한통운까지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박삼구 그룹 회장이 남다른 ‘애착’을 보여왔던 회사지만, 대한통운 인수 당시 교환사채 발행과 풋백옵션 조항 등이 다른 계열사한테 자금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인수 3년 만에 시장에 다시 내놓은 것이다. 1년 전 “대한통운은 안 판다”던 태도가 달라진 것은 그만큼 워크아웃 조기졸업에 대한 의지가 강해졌다는 뜻으로 읽힌다. 금호타이어가 최근 3분기 연속 흑자를 내고, 아시아나항공도 사상 최대 실적 기록을 세우는 등 계열사들의 실적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워크아웃 조기졸업을 점치기엔 아직 이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대우종합기계가 2년이 채 안 돼 워크아웃을 졸업한 사례가 있긴 하다”면서도 “금호가 영업을 잘해 차입금 상환 등 졸업 요건을 언제쯤 갖출 수 있을지는 더 두고봐야 한다”고 말했다.
금호그룹이 성공적으로 워크아웃을 졸업하는 것과는 별개로, 경제계에 금호그룹이 던진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 매각 문제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금융권에서는 대우건설 매각 때처럼 ‘승자의 저주’라는 덫에 걸려선 안 된다는 두려움이 신경질적일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전했다. 채권단이 과거 기업 인수·합병(M&A) 때와 달리 현대그룹에 인수자금 1조2000억원의 출처 등을 엄밀하게 따져묻는 것도 금호 사태로 인한 ‘학습효과’가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그렇다고 기업과 금융권이 금호 사태의 ‘교훈’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현대차와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 희망가격을 적정가격보다 각각 6000억원과 1조원씩 높게 제시했다. 문어발식 확장을 위해 무리한 욕심을 내는 기업의 행태가 되풀이된 셈이다. 금호 사태 이후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남용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현대건설 매각과정에서 현대그룹의 실패로 인해 직접 피해를 입게 되는 채권자나 투자자가 아닌 정책금융공사나 금융당국이 나서서 ‘승자의 저주’를 강조하는 건 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난, 이상한 경우”라며 “공적자금을 투입한 기업을 비싸게 팔아 매각수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자기 지위와도 상충된다”고 지적했다. ‘승자의 저주’란 말이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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