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 피해 불가피
국내 해운업계 4위(매출 기준)인 대한해운이 25일 서울중앙지법에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 개시를 신청했다고 공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경기 침체로 영업적자가 쌓인데다 용선료 지급부담 등으로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대한해운은 회생절차 ‘카드’를 염두에 두면서도 불과 한 달 전인 지난해 12월 866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해, 일반 투자자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대한해운은 해운업이 호황이었던 2008년엔 매출 3조원대로 세 배 가까이 급성장한 대형해운회사다. 벌크선을 위주로 외국의 대형선사에서 빌린 선박(용선)을 다른 중소선사에 빌려주고 대선료를 받는 방식의 매출액이 전체의 70%가량을 차지한다. 한진해운이나 에스티엑스(STX)팬오션 등 지난해 흑자전환한 해운회사들과 달리, 적자에 허덕였던 결정적인 이유는 이 용선료 부담 때문이다. 2007~2008년 고가에 장기용선을 했는데 중소선사들로부터는 대선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샌드위치 신세에 놓인 탓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최근 유럽 선주들과 용선료 인하협상을 벌인 게 실패하자, 하루 140만달러의 용선료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해운업계는 당혹스러워하면서도 큰 파장을 염려하진 않는 분위기다. 어느 정도 예견된 위기인데다가, 대부분의 선박이 외국 선사들로부터 빌려온 것이어서다. 금융권 부채도 750억원가량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조선업체에 발주해놓은 선박은 5~6척이다.
하지만 유상증자와 관련해선 ‘주주 피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대한해운은 당시 보통주 200만주와 우선주 200만주를 주당 2만1650원에 공모해 866억원을 증자했다. 이런 가운데 김창식 전 대표이사는 지난달 30일 퇴임하면서 보유주식 8725주(2억여원어치)를 매도했다. 반면 주주들은 한달여 뒤 법원의 결정만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회생신청이 기각되면 주식은 정리매매에 들어가고, 회생 개시가 결정되더라도 주가 상승 가능성은 높지 않다. 회사 쪽이 1000억~2000억원의 현금보유량이 남아 있는데도 용선료 부담을 덜기 위해 발빠르게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는 비난도 일고 있다.
황예랑 이찬영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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