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기업 절반가량이 “현지바이어 연락끊겨”
리비아가 극도의 혼란에 빠지면서 한국기업들의 건설현장에서 차량이 탈취되고 일부 바이어들의 연락이 끊기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 22일(현지시각) 리비아 동북부와 트리폴리 지역 등 건설현장 세 곳에서 한국기업들의 차량 및 장비가 탈취되는 재산상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날 오전 6시께 트리폴리에서 남서쪽으로 150km 떨어진 ㅇ건설에는 젠탄 현장에 주민 30여명이 침입해 건설장비 3대와 차량 3대를 강탈해갔다. 대한통운 자회사인 ㅇ사가 맡고 있는 주메일 대수로공사 현장에도 오전 5시 현지 주민들이 침입해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또 오전 9시 벵가지 남서쪽으로 140km 떨어진 ㄷ건설 즈위티나 현장에서는 시국이 어수선한 틈을 타 현지 고용 인력들이 차량 5대를 탈취했다가 반납했다. 정부는 외교부와 국토해양부 직원으로 구성된 신속대응팀을 23일 오후 이집트로 급파했다. 도태호 국토해양부 중동대책반장(건설정책관)은 “현지 직원들이 많지 않은 중소규모 업체들은 직원들의 전면 철수를 고려하고 있지만 대형 건설현장은 아직 전면철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육로를 통해 이집트로 대피하던 동북부 투루북에 있던 한국 직원 9명은 22일 낮 1시 출국비자 없이 이집트 국경을 통과해 카이로로 이동하고 있다. 반면 ㄷ사 직원의 일가족은 이날 로마로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트리폴리 공항의 탑승 수속이 지연돼 결국 포기하고 집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리비아는 출국 때도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며, 이런 절차를 생략하면 재입국이 금지될 수 있다.
코트라가 리비아로 수출하는 기업 575곳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했더니, 응답기업 111곳 가운데 31.5%인 35곳이 수출대금 220만달러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연간으로 따지면 1870억달러에 달한다. ‘바이어와의 연락이 끊겼다’는 응답이 45.7%로 가장 많았고, ‘선적·하역 등 운송에 차질을 빚고 있다’(31.4%)와 ‘수출대금을 받지 못했다’(28.6%)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음료수를 생산하는 ㄱ사는 수출 화물이 리비아 미수라타항에 도착했는데도 바이어와 연락이 닿지 않고 대금도 받지 못한 상태다. 회사는 화물을 한국으로 반송해야 할지, 현지 창고에 보관해야 할지도 결정하지 못한 채 리비아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100만달러 미만의 수출기업이 500곳에 달해 사태가 장기화되면 중소기업의 피해가 막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은주 박영률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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