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낸 ‘VIP 브리프’
여야의원들 “임무 잊었다”
여야의원들 “임무 잊었다”
한국은행의 독립성 문제가 9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뜨거운 감자’가 됐다. 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한은이 청와대에 정례적으로 제출한 ‘브이아이피(VIP) 브리프’ 사례를 들어, 한은이 ‘정부 눈치보기’에 급급해 물가안정을 소홀히 했다며 김중수 한은 총재를 질타했다.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과거 어떤 정부에서도 한은이 청와대에 밀착형 보고를 한 적이 없다”며 “이는 한은의 독립성 훼손의 징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총재는 “브이아이피 브리프가 극소수만 보고 있다고 하는데, 한은 국실장 전원이 보고 있고 청와대에도 간 것”이라며 “한은이 가진 정보를 (외부와) 공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아 정보공유 차원에서 작성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해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은 “국실장이 다 보고 있으면 기밀도 아닌데 왜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는 것은 거부하냐”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한은이 보고서를 만든 근거를 한은법 94조 ‘기획재정부장관과 금융위원회는 정책 수립에 필요하다며 인정하는 경우 상호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를 들고 있는데, 법조문 어디에도 청와대는 나오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오제세 민주당 의원은 “현행 한은법이 규정한 ‘중립적이고 자율적인 정책 집행과 자주성 존중의 원칙’(3조)을 훼손했다”며 “한은의 의무는 (청와대에) 보고하는 게 아니라 물가를 지키는 것인데 한은 본연의 임무를 잊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김 총재는 “브이아이피 브리프는 한은과 정부의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라며 “지난해 11월부터 13~14건 정도의 보고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 총재는 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금리 인상을 실기해 물가 불안을 촉발했다는 여야 의원의 지적에 대해 “지난 달 높은 수준의 물가는 유가 상승을 고려하지 못해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고물가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총재는 “기준금리 인상폭이 충분하지 않다거나 시기가 늦었다는 지적이 있지만 동의할 수 없다”며 “평가는 시간이 흐르면 내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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