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고금리자산에 베팅하는 ‘일본 투자자’ 지칭
국가재난때 자금회수 경향…엔화 강세 부르기도
국가재난때 자금회수 경향…엔화 강세 부르기도
일본 동북부 대지진 사태 이후 ‘와타나베 부인’의 거취가 다시 한번 금융시장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와타나베 부인은 저금리 엔화 대출을 이용해 고금리 국외 자산에 투자하는 일본의 주부 외환투자자를 일컫는 말이죠.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초대형 지진이 발생했다면 원화는 당연히 약세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엔화는 오히려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19년 연속 세계 최대 채권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일본이 재건 비용이나 보험금 지급 등을 충당하기 위해 국외에 투자한 엔화 자산을 회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다 중동의 정정 불안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현상, 3월 결산이 많은 일본 기업들의 계절적 수요, 엔화 강세에 베팅하는 투기적 수요 등이 복합적으로 더해져 엔화 강세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엔-달러 환율 80엔 선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 이하로 떨어질 경우 일본 수출에 큰 타격이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엔 캐리 자금의 청산이 통계로 확인되지는 않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 통계 역시 최소한 한달이 지나야 집계되기 때문입니다. 이때 유용하게 쓰이는 참고자료가 과거 통계입니다. 1995년 한신 대지진 발생 당시 일본의 국제수지 계정을 보면, 일본으로의 자금 환류 현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항목별로는 회수가 쉬운 단기 채권을 적극 팔았고, 국외 주식도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외 중장기 채권은 회수까지는 아니지만 투자 규모가 크게 줄어들어 엔화 강세 압력으로 작용했죠. 국외 대출도 회수해 엔화 강세를 초래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일본은 경상수지에서 흑자를 내고, 자본수지에서의 적자(자금유출)를 통해 외환시장의 균형을 맞추는 구조입니다. 자본수지 적자 폭을 축소하는 것만으로 엔화 강세 효과가 있습니다.
사태 수습 이후에는 엔화 약세가 진행될 것이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복구 작업을 위한 일본은행의 유동성 방출과 일본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가 엔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한신 대지진 발생 이후 1996~98년 사이에도 엔화 약세 현상이 나타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달러 대비 엔화 약세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꾸준히 개선된 결과라는 사실을 근거로 엔화의 추세적 약세 전망에 이의를 다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엔화 강세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된다는 것은 일본 수출기업과 경쟁하는 한국 수출기업이 반사 이익을 누리는 기간도 그만큼 늘어난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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