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능가하는 독소조항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견줘 내용이 더 악화된 조항들도 여럿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은 정부 조달에서 외국산 상품에 대한 내국민 대우를 규정하고 있다. 다만 한-미 협정은 정부조달과 관련해, ‘급식 프로그램의 증진을 위한 조달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학교 급식 예외 규정을 뒀다. 이와는 달리, 한-유럽연합 협정의 정부 조달 항목에서는 학교 급식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다. 앞으로 유럽산 농산물 조달과 관련해 분쟁이 벌어질 소지를 열어둔 셈이다.
한-유럽연합 협정은 또 세계무역기구 협정에서는 개방하지 않았던 민자 사업의 문호도 열었다. 중앙기관 외에도 인천, 경기, 서울 등 3개 광역단체가 발주하는 민자 건설 사업이 개방된 것이다. 문제는 인천시의회가 지난 1월 제정한 ‘인천시 지역건설산업 활성화 촉진 조례’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조례는 인천시가 발주하는 대형 공사에 지역 건설사가 참여하도록 돼 있다. 유럽연합 건설사가 이 조례를 문제삼고 나올 수 있다.
500만 중소 상인에게 최소한의 보호 장치를 제공한 유통산업발전법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에 관한 법도 한-유럽연합 협정과 충돌한다. 근본 원인은 우리나라가 아무런 제한 없이 유통분야를 유럽연합 27개국에 개방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프랑스와 벨기에 등 유럽 7개국은 소매 분야에서 경제적 수요 심사를 해 기존 매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경우 백화점 개업을 인가하지 않을 권한을 확보했다.
아울러 전기담요와 전기다리미, 배터리 충전기 등 화재·감전 등의 위험 우려가 큰 전기용품에 대해 안전인증기관의 정기 검사를 받도록 하는 규제도 계속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외부 기관의 인증을 대신해 생산회사가 자체 적합성을 선언하면 전기용품의 안전성을 인정하도록 두 나라가 합의한 결과다.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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