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 세계 3대 유종 가격 추이
지난 2월16일, ‘재스민 혁명’으로 아랍은 어수선했다. 리비아와 예멘, 바레인에서 핏빛 민주화 시위가 계속됐다. 불안한 국제 정세 탓에 석유 시장도 크게 출렁였다. 이날 3월 인도분 미국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배럴당 0.67달러 오른 84.99달러를 기록했다. 한술 더 떠 북해산 브렌트유는 배럴당 2.14달러 오른 103.78달러로 장을 마쳤다. 브렌트유의 상승 폭이 3배나 컸다.
이날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수십년 동안 세계 석유가격의 가늠자로 군림해왔던 서부텍사스유는 통상 브렌트유보다 약간 높게 거래돼 왔으나, 이날 자존심을 크게 구겼다. 브렌트유가 지난해 4월부터 서부텍사스유보다 1~3달러 정도 앞서 나가기 시작하더니 올 2월부터는 그 격차를 더 크게 벌리기 시작했다. 2월16일엔 역전 폭이 배럴당 18.79달러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6일에도 서부텍사스유보다 브렌트유는 14.12달러 높았고, 덩달아 두바이유도 6.30달러 높게 거래됐다. 이 때문에 이재형 한국석유공사 해외석유동향 과장은 “세계 석유시장의 바로미터인 서부텍사스유의 상징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왜 이런 기이한 역전 현상이 나타났을까? 답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브렌트유가 ‘아랍 혁명’으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1월부터 북아프리카와 아라비아반도에서 계속되고 있는 민주화 시위로 유럽으로 이어지는 석유 수송 관문인 수에즈 운하 주변을 둘러싼 긴장감이 한층 높아진 탓이다. 내전이 국제전으로 번진 리비아의 저유황 경질유의 85%를 수입하던 유럽에서 공급 물량이 줄어든 것도 브렌트유의 상승을 부채질했다.
더 큰 이유는 서브텍사스유의 독특한 시장환경에서 찾을 수 있다. 북아프리카·중동 정세의 불안이 국제 석유시장에 똑같은 파장으로 전달되지 않고 따로 노는 배경엔 서부텍사스유의 현물 인도 지점인 미국 오클라호마주 쿠싱 지역에 사상 최고치를 거듭 경신하고 있는 엄청난 재고물량 때문이다. 7일 한국석유공사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3월25일 쿠싱의 원유 비축량은 4188만배럴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고야마 겐 일본에너지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2월에 펴낸 한 보고서에서 “서부텍사스유와 브렌트유 사이 전통적 관계를 회복하거나 가격 차이가 해소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달리 말해, 서부텍사스유가 국제 석유시장의 대표 주자 자리를 회복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서부텍사스유는 고유황 중질유로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지는 두바이유한테도 밀려, 세계 3대 유종 가운데 3위로 내려앉았다.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석유값의 바로미터인 두바이유는 서부텍사스유보다 연평균 배럴당 4~5달러 낮게 거래되다가 최근 거리를 좁히더니 올해부터는 완전히 역전시켰다. 이재형 과장은 “‘왜곡된’ 서부텍사스산 유가가 우리나라의 석유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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