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준 ‘연기금 주주권’ 발언 속내
청와대 “개인 소신일뿐”…일단 선긋기
대기업들 미진한 투자도 영향 미친듯
청와대 “개인 소신일뿐”…일단 선긋기
대기업들 미진한 투자도 영향 미친듯
‘공적 연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26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제안이 큰 파장을 낳을 전망이다. 청와대 쪽은 “개인적인 소신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대통령 직속위원회로서는 새로운 국정의제를 던져 국민적 공감대를 얻으려 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재계도 속내를 파악하느라 촉각을 곤두세웠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기업의 공적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국민연금 등의 주주권을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여기엔 정부가 그동안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를 내세워 규제 완화 등을 해준 데 비해 투자와 일자리 창출, 동반성장 등 기업들의 행보가 기대치에 못 미치는 데 대한 불만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가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반대하는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들이 계열사 부당 지원, 분식회계 등으로 기업 가치를 훼손했다고 판단해 주주권을 적극 행사한 것이다. 국민연금은 2009년 유엔 책임투자원칙(UN PRI)에 가입한 뒤로, 투자할 때 환경·사회·지배구조를 따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139곳에 이른다. 삼성전자(5%), 현대차(5.95%), 포스코(5.33%), 엘지(LG)화학(5.38%), 에스케이이노베이션(6.59%), 신한금융지주(6.35%), 케이비금융지주(5.19%) 등 국내 대표기업들의 대주주다.
당시 경제개혁연대 등은 “재벌 총수가 소수의 지분만을 갖고 전횡을 일삼는 환경에서 기관투자자들마저 침묵한다면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지킬 수 없다”며 “주총 안건 제안, 주주대표소송 제기 등 더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라”고 주문했다. 외국은 한발 더 앞서 있다. 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주공무원연금(캘퍼스)은 대형 상장사에서 과반수 찬성을 얻지 못한 이사는 사임하도록 하는 캠페인을 벌였고, 세계 3대 연기금 운용회사인 에이피지(APG)자산운용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논란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영 감시활동은 기업 가치를 높이는 한편, 지속가능한 기업에 투자함으로써 연기금의 수익률을 장기적으로 높여준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사회책임투자 컨설팅 회사인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이사는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주주행동 논의가 국내에선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도한 정부 개입은 ‘관치’의 통로가 될 수도 있다. 당장 전경련 등 경제단체들은 ‘연금 사회주의’라며 “기업 가치 하락이 우려된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미래기획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기금의 투자 전문가들이 결정하는 것”이라며 “관치가 아니라 시장에서 작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예랑 황준범 기자 yrcomm@hani.co.kr
국민연금의 주요 기업 보유 지분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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