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재정수반 법률 800조” 뭉뚱그려 비용 추계
중복법안 비용 이중계산…실제와 약 400배 차이
중복법안 비용 이중계산…실제와 약 400배 차이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짜면서 국회의 ‘포퓰리즘적 재정수반 입법’의 추진을 막겠다면서 관련 통계를 터무니없이 부풀린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는 지난달 23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 아래 ‘국무위원 재정전략회의’를 개최한 뒤 “내년도 정치 일정과 맞물려 복지와 조세감면 등에서 포퓰리즘적 재정수반 입법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며 “국회에서 재정에 과다한 부담을 주는 입법 추진 사례를 방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그 구체적 근거로 18대 국회(2008~2012년) 의원발의 법률안 가운데 예산이 뒤따르는 재정수반 법률이 2780건으로, 2011~2014년 발생하는 비용의 합계(소요비용 추계)가 무려 800조원에 이른다는 통계를 덧붙였다. 하지만 이는 통계의 기본조차 무시한 엉터리 계산인 것으로 확인됐다.
1일 기획재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중복되는 법률안의 비용을 이중으로 계산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의원발의 법률안들 가운데 중복되거나 유사한 법률안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따로따로 계산해 합산하면서 결과적일 비용이 크게 부풀려진 것이다. 예를 들어 2009년 1월 유선호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쌀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은 2011~2013년 3년 동안 약 22억원의 비용이 예상되지만, 18대 국회 들어서 같은 법안만 모두 13개가 제출됐다. 그런데 정부의 계산대로 하면 비용은 22억원의 13배 안팎으로 더 늘어난다. 이런 예는 숱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28일 확정한 ‘2012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에서도 “재정수반 법률의 일방적 입법 추진을 예방하겠다”고 명시했다. 또 이날 류성걸 기획재정부 2차관은 브리핑에서 “의원 입법에 따른 재정 압박이 크다”고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 관계자는 “도대체 800조원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발의 단계에서 유사, 중복 법률안에 따르는 비용을 이중으로 계산한 건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또 하나의 법률안이 시행되면 비용이 얼마나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비용추계서가 붙지 않은 법률안(전체 발의 법률안의 70% 안팎)의 비용을 객관적이면서도 합리적 기준 없이 임의로 계산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법안 중복을 고려하지 못했지만, 800조원이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수치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재정수반 법안이란 게 국회를 통과해야 비용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부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달 펴낸 ‘재정소요점검제도 적용방안 연구’에서 올해 309조537억원의 예산 가운데 기존 법률 및 제도에 의한 게 308조5570억원이고, 지난해 통과된 51건의 신규 법률에 의해 추가로 발생한 예산 소요는 4967억원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내놓은 4년간 800조원(연간 200조원)의 비용 합계와 2010년 신규 법률에 의한 실제 예산 소요(4967억원)는 약 400배 차이가 난다. 신규 법률엔 정부 제출과 의원 발의 법안이 섞여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지난 3년여 동안 온갖 감세 정책으로 구멍난 재정을 메우겠다면서 엉뚱하게 국회에 화살을 돌리려다 자충수를 뒀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 관계자는 “의회가 국가 재정을 어렵게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의원 발의도 입법부 내에서 여러 절차를 거쳐 합리적으로 조정되지, 그대로 통과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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