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법상 설립목적 및 독립성 조항
한은, 재정부와 정례 협의
설립 목적인 물가안정 이외
고용 회복도 공조 뜻 내비쳐
설립 목적인 물가안정 이외
고용 회복도 공조 뜻 내비쳐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14일 ‘거시정책실무협의회’를 정례화해 정책 공조에 나서기로 한 것은 그렇잖아도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훼손은 곧바로 중앙은행의 목표인 물가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경제에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한은은 지난해 4월 김중수 총재 취임 이후 지나치게 정부 정책을 의식해 통화정책을 운용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김 총재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인물이어서 총재 자격 논란이 일어난 데 이어 지난해 11월부터는 주요 경제현안과 관련한 브이아이피(VIP)용 보고서를 만들어 청와대에 정례적으로 보고해 온 사실이 드러나 도마에 올랐다.
재정부 차관이 통화정책 최고결정기구인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 참석해 발언할 수 있도록 하는 ‘열석발언권’이 존재한다는 점과 현행 금통위 구성이 정부 쪽 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도 한은 독립성을 해치고 있다. 현행 금통위 구성은 김중수 총재를 제외한 5명 가운데 정부 쪽 인사가 3명을 차지하고 있어 재정부의 정책방향이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사정으로 말미암아 한은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6.2%나 성장하는 경기상승 국면에서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놓쳤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거시정책실무협의회’가 구성되면 통화정책에 대한 정부의 관여가 더 강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애초 이 협의회는 재정부가 설립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한은 쪽은 별다른 이의제기없이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은 내부에서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한 한은 간부는 “지금도 재정부와 협의를 하는데 뭘 새로 협의할 게 있어 실무협의회를 만드는지 모르겠다”며 “지금도 열석발언권 행사 문제로 오해를 받고 있는데 그런 오해를 더 키울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재정부와 한은의 이런 방식의 정책공조는 물가안정을 설립 목적으로 규정한 현행 한국은행법에 저촉될 소지도 있다. 1997년 말 개정된 한은법은 은행감독원을 분리하는 대신 한은의 독립성을 일부 강화하고, 통화정책의 목표를 물가안정으로 단일화했다. 그러나 재정부와 한은은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거시정책은 물가안정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는 가운데 고용 회복이 지속될 수 있는 방향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데 공감했다”고 밝혀 물가안정 외에 고용이라는 목표에도 정책공조를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한은이 물가안정이라는 자신의 설립목적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면서 지금보다 더 많은 일을 하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이런 협의회를 가동하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뜩이나 정부의 성장드라이브 정책을 뒷받침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온 한은이 이번에는 아예 재정부와 정례 협의회까지 구성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선거 국면에서 경제정책의 리스크가 커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박현 이재명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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