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계좌 검은돈’ 1조원 미스테리
현지 은행들 비밀주의 고수, 과거 거래내역 파악 힘들듯
현지 은행들 비밀주의 고수, 과거 거래내역 파악 힘들듯
스위스 국세청이 제3국 거주자에 대한 배당세 58억원을 보내오면서 드러난 1조원대 투자금의 주인을 추적하는데 국세청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스위스 쪽에서 과거 거래 내역을 소급해서 제공해주지 않는 한 1조원 투자금의 실체는 온갖 의혹만 남긴 채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은 스위스 비밀계좌를 거쳐 국내 증시에 투자된 1조원대 자금 가운데 절반 이상이 ‘검은머리 외국인’(외국인을 가장한 한국인 투자자)의 음성자금일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와 조세조약을 체결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높은 세율(배당금의 20%)이 적용되는 조세피난처를 통해 들어온 자금일 수도 있지만, 굳이 세금을 더 내면서까지 스위스 계좌를 거쳐 국내 증시에 투자했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검은머리 외국인’의 투자금이라면, 개인이 불법적으로 조성해 국외로 빼돌린 자금이거나 기업이 조세피난처를 통해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뒤 조성한 비자금일 가능성이 있다. 일부에선 국외에 숨겨진 정치자금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금융가에선 기업의 비자금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한 대형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는 “대기업들이 조세피난처에 비자금을 숨겨두고 외국인이 국내 본사와 계열사에 투자하는 것처럼 꾸며 국내로 들여온다는 소문이 과거에도 파다했다”고 말했다.
의혹은 충분하지만 투자금의 주인을 밝혀내기는 쉽지 않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2월28일 한-스위스 조세조약에 조세정보교환 규정을 추가하는 개정안에 가서명했다. 양국이 비준 절차를 마무리하면 올해분부터 정보 교환이 가능해진다. 스위스에 개인 또는 기업 명의로 개설된 계좌 명세 및 금융거래 내역에 대한 정보 제공을 요청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번에 드러난 자금의 실체를 알려면 2003~2008년 거래 내역을 확보해야 한다. 국세청은 “과거 거래 내역 등에 대해서도 정보 제공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비밀주의’를 고수해온 스위스 은행들이 과거 정보를 내주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금융당국도 마땅한 수단이 없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외국인의 투자 규모를 파악할 수 있지만 자금의 실제 출처가 어디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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