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판매땐 “매출증가” 일반적 예상 불구
정체성 훼손 ‘일본 리포비탄’ 짝 날까 걱정
정체성 훼손 ‘일본 리포비탄’ 짝 날까 걱정
약국을 ‘탈출’할 것인가, ‘사수’할 것인가?
연매출 1000억원을 웃도는 박카스의 슈퍼마켓 판매 여부를 놓고 동아제약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오는 8월부터는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도 박카스를 비롯한 44개 일반의약품을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게 됐지만 정작 박카스를 생산하는 동아제약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동아제약 관계자는 17일 “약국 판매가 기본이라는 입장이지만, 슈퍼마켓 판매 여부에 대해서도 검토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동아제약이 결정을 머뭇거리는 것은 일단 약사들의 반발을 의식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슈퍼마켓 진출이 가져올 경제적 효과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슈퍼마켓과 편의점까지 판매 채널이 다양해지면 매출이 늘어날 것이란 일반적 예상과 달리, 박카스라는 히트상품의 ‘정체성’이 바뀌면서 되레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하태기 에스케이(SK)증권 애널리스트는 “박카스가 슈퍼마켓에서도 팔리면 음료 제품의 하나로 인식될 수 있다”며 “박카스는 일반 음료와 다르다는 그 동안의 특화된 이미지가 무너지는데다, 음료 제품의 상품 주기가 짧은 것도 부담을 줄 것”이라 전망했다.
지난 1963년 드링크제로 출시된 박카스는 50년 가까이 ‘피로회복제’라는 독특한 프리미엄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해왔지만, 슈퍼마켓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흔히 보는 코카콜라나 기타 청량음료처럼 음료시장의 ‘수많은 제품 중 하나’로 그 위상이 추락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박카스보다 한해 앞서 일본에서 출시된 드링크제품인 다이쇼제약의 ‘리포비탄’ 사례도 동아제약엔 부담이다. 1999년 의약외품으로 분류된 리포비탄은 슈마마켓으로 판매채널을 넓혔으나 초기엔 판매가 늘다가 이후 다양한 음료제품과의 경쟁에 밀려 연매출액이 100억엔 이상 줄어드는 상황에 직면했다. 같은 기간 일본 내 전체 음료시장 규모가 300억엔 이상 늘어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더라도 독보적 지위를 갖던 시장을 지키는 게, 규모는 크지만 경쟁 제품이 다양한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보다 유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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