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급 출신, ‘고시 출발선‘ 5급까지 16~26년
나이 많아 고시 출신과 승진 경합때도 불리
나이 많아 고시 출신과 승진 경합때도 불리
“나이만 보면 다 안다.”
“국토해양부에 비고시(7, 9급)와 행정고시 출신 과장이 몇명이나 되냐”는 기자의 질문에 유철규 국토부 노조위원장이 내놓은 엉뚱한 답변이었다. 지난달 국토부 조합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실제 과장들의 나이를 갖고서 고시·비고시 출신이 각각 몇명이나 되는지 세보려 했다고 말했다. 애초 인사팀에 자료를 요청했으나, 주지 않자 막고 품기식 방법을 쓴 것이다.
유 위원장은 “고시 출신 서기관은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인데, 7급 공채가 서기관으로 승진하면 대략 평균 50세 안팎이다”며 “국토해양부는 특히나 비고시 출신의 나이만 갖고서도 고시와 비고시 출신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엉뚱해보였던 그의 말은 사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국토해양부에서 7급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면 고시 출신의 출발점인 5급까지 가는데 13년 3개월이 걸린다.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 건국대·선문대 컨소시엄에 맡긴 용역 결과 44개 정부 부처 일반직 공무원이 7급에서 5급까지 가는데 평균 16년 10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9급은 10년 5개월을 더 보태야 한다. 여기에 능력과 운에 따라서 승진 연수에 가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저승진소요연수’란 게 있어서, 7급에서 6급으로 가는데 3년, 6급에서 5급으로 가는데 4년을 꽉 채워야 한다. 비고시 출신 공무원 ㅂ씨는 “100미터 달리기에 비유하면 고시는 50미터 앞에서 출발한다”며 “비고시 출신이 50미터도 가기 전에 경주가 끝난다”고 말했다.
비고시 출신에게 나이는 흠이다. 승진시 불리하게 작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시 출신들과 경합할 땐 더욱 그렇다. 오행록 국토부 인사팀장은 ‘7급 이하 공채 출신들이 고위 공무원단(2급 이상)에 왜 이렇게 진입하기 어렵냐’는 질문에 “(비고시 출신들은) 승진시 기본 소요 시간이 길기 때문이고, 아무래도 능력도 고려 요인”이라고 말했다. 고위 공무원 임용에 법과 제도상 나이가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다소 거칠게 말하면 비고시 출신 배제의 명분으로도 나이가 쓰인다. 중앙 부처의 한 인사담당 과장은 “비고시 출신들이 국장(고위 공무원단 나급-2급)이나 부이사관(3급)을 달 때쯤이면 50세가 넘어 고령화되기 때문에 쓰기 어렵다”고 말했다. 승진시 나이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차별이다.
대부분 정부 부처의 사무관(5급) 분포를 보면 5급과 5급 이하 공채 출신의 숫자가 엇비슷하다. 5급에서 4급으로 승진할 때 기회가 똑같이 주어진다고 가정한다면, 앞서 10년이 훨씬 넘는 공무원 생활을 한 비고시 출신이 많은 경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훨씬 유리할 법도 하다. 하지만 비고시 출신은 4급으로 가는데도 고시 출신보다 보통 2~3년 이상 더 기다려야 하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출발선에서 벌어진 격차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벌어지는 것이다. 4, 3급을 거쳐 정점인 고위 공무원에 진입할 때쯤이면 5, 7급 비고시 출신 가운데 살아남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지난 3월 말 현재 48개 정부 부처 고위 공무원 1510명 가운데 7, 9급 공채 출신은 8.6%(130명)에 불과했다.
고시 출신은 제도적으로 출발선 한참 앞에서 달릴 수 있도록 특혜를 받았다. 하지만 그 특혜가 5급 이하 공채 출신들과 비교해 무려 15~20년 이상 앞서간다는 것은 분명 지나친 특혜다. 더 큰 문제는 출발 이후에도 계속되는 ‘특혜’에 있다. 부서에 배치된 이후 고시 출신자들에 대한 어떤 제도적 특혜도 허용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시와 비고시간 계속해서 벌어지는 간극은 고시에 우호적인 인사 환경을 빼놓곤 설명하기란 어렵다. 우호적 환경이란 고시 출신에 대한 우대, 비고시 출신에 대한 차별을 품고 있다. 이런 메커니즘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시 출신들의 신분제에 가까운 우월의식과 선민의식, 고시 출신들의 끼리끼리 문화, 순혈주의가 그것이다. 반면에 고시 출신의 인사권과 주요 보직 독점 등은 쉽게 관찰된다. 국토해양부·지식경제부·기획재정부 등 웬만한 부처의 인사과(운영지원과)는 고시 출신들이 오랫동안 도맡아 왔다. 지난달 국토부 내부 통신망에 노조위원장이 권도엽 장관한테 보낸 공개편지가 떴다. 운영지원과장 인사를 앞두고서 “국토부 (공무원의) 대다수인 6급 이하 직원들과 7, 9급 공채자에게 희망을 심어주실 분”을 앉혀달라는 내용이었다. 비고시 출신중 한 명을 인사 책임자로 임명해달라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국토부뿐 아니라 재정부와 지경부의 노조위원장들은 장차관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고시 출신들에게도 충분한 승진 기회를 부여해달라고 요청해왔다. 그때마다 “능력이 있으면…”이란 모범 답안이 돌아오지만, 현실은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인사과(팀) 외 주요 보직도 고시가 독식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경우엔 세제·예산실과 경제정책·국제금융·정책조정국에서 비고시 출신 과장을 찾기 어렵다. 한 공무원은 “5급 출신들이 주요 보직을 독점하다시피하면서 고시와 비고시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된다”고 말했다. 비고시 출신들은 주요 보직도 맡지 못하면서 상대적으로 능력과 경력을 키울 기회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비고시 출신의 인사에 불리하게 작용하기 마련이다. 고시 출신들이 말하는 능력의 차이란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다손치더라도, 사실 고시 중심의 조직 및 인사 운영이 이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구조인 것이다. 논쟁적인 고시제 폐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다른 출발선에서 출발한 이후에라도 경쟁의 조건과 기회만이라도 공평했으면 한다는 게 기자가 만난 많은 비고시 출신 공무원들의 바람이었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나이를 알더라도 몇급 출신인지 알 수 없는, 즉 ‘출생에 따른 신분제’가 폐지된 공무원 사회를 꿈꾸고 있었다.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영국, 체벌 허용” 중앙·동아 보도는 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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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 출신은 제도적으로 출발선 한참 앞에서 달릴 수 있도록 특혜를 받았다. 하지만 그 특혜가 5급 이하 공채 출신들과 비교해 무려 15~20년 이상 앞서간다는 것은 분명 지나친 특혜다. 더 큰 문제는 출발 이후에도 계속되는 ‘특혜’에 있다. 부서에 배치된 이후 고시 출신자들에 대한 어떤 제도적 특혜도 허용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시와 비고시간 계속해서 벌어지는 간극은 고시에 우호적인 인사 환경을 빼놓곤 설명하기란 어렵다. 우호적 환경이란 고시 출신에 대한 우대, 비고시 출신에 대한 차별을 품고 있다. 이런 메커니즘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시 출신들의 신분제에 가까운 우월의식과 선민의식, 고시 출신들의 끼리끼리 문화, 순혈주의가 그것이다. 반면에 고시 출신의 인사권과 주요 보직 독점 등은 쉽게 관찰된다. 국토해양부·지식경제부·기획재정부 등 웬만한 부처의 인사과(운영지원과)는 고시 출신들이 오랫동안 도맡아 왔다. 지난달 국토부 내부 통신망에 노조위원장이 권도엽 장관한테 보낸 공개편지가 떴다. 운영지원과장 인사를 앞두고서 “국토부 (공무원의) 대다수인 6급 이하 직원들과 7, 9급 공채자에게 희망을 심어주실 분”을 앉혀달라는 내용이었다. 비고시 출신중 한 명을 인사 책임자로 임명해달라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국토부뿐 아니라 재정부와 지경부의 노조위원장들은 장차관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고시 출신들에게도 충분한 승진 기회를 부여해달라고 요청해왔다. 그때마다 “능력이 있으면…”이란 모범 답안이 돌아오지만, 현실은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인사과(팀) 외 주요 보직도 고시가 독식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경우엔 세제·예산실과 경제정책·국제금융·정책조정국에서 비고시 출신 과장을 찾기 어렵다. 한 공무원은 “5급 출신들이 주요 보직을 독점하다시피하면서 고시와 비고시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된다”고 말했다. 비고시 출신들은 주요 보직도 맡지 못하면서 상대적으로 능력과 경력을 키울 기회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비고시 출신의 인사에 불리하게 작용하기 마련이다. 고시 출신들이 말하는 능력의 차이란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다손치더라도, 사실 고시 중심의 조직 및 인사 운영이 이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구조인 것이다. 논쟁적인 고시제 폐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다른 출발선에서 출발한 이후에라도 경쟁의 조건과 기회만이라도 공평했으면 한다는 게 기자가 만난 많은 비고시 출신 공무원들의 바람이었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나이를 알더라도 몇급 출신인지 알 수 없는, 즉 ‘출생에 따른 신분제’가 폐지된 공무원 사회를 꿈꾸고 있었다.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영국, 체벌 허용” 중앙·동아 보도는 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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