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70%·반도체 -44% 등 주력제품 수출 급감
관세철폐 먹거리 수입 급증…지경부 “더 지켜봐야”
관세철폐 먹거리 수입 급증…지경부 “더 지켜봐야”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뒤 첫달의 교역 성적표는 6000만달러 적자로 나타났다. 선박과 반도체 등 우리의 주력 수출제품의 수출은 큰 폭으로 줄어든 반면, 관세 철폐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유럽산 자동차와 돼지고기 등의 수입이 크게 늘어난 결과다. 월간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유럽연합과의 교역에서 무역적자를 기록한 것은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처음이다. 일부에선 이를 두고 자유무역협정을 계기로 유럽연합을 상대로 그간 유지해온 무역흑자 기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1일 관세청이 발표한 ‘한-유럽연합 에프티에이 발효 후 한달간(7월1~29일)의 수출입 성과 분석’을 보면, 지난달 우리나라의 대유럽연합 수출은 40억8000만달러, 수입은 41억4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월간 기준으로 6000만달러 무역적자를 본 셈이다. 1년 전 같은 달에 견줘 수출은 12% 줄었고 수입은 되레 34% 늘어났다. 지난해 7월 우리나라는 유럽연합을 상대로 17억5000만달러 흑자를 거뒀고, 협정 발효 직전인 6월만 해도 9억7000만달러 흑자를 유지했다.
가장 크게 눈에 띄는 대목은 관세가 인하된 유럽산 품목들의 수입이 큰 폭으로 늘어난 점이다. 대표적인 관세 인하 품목인 자동차의 수입(3억4800만달러)은 1년 전에 견줘 96%나 불어났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대유럽연합 자동차 수출 증가율(84%)을 웃도는 수치다. 자동차는 우리 정부의 에프티에이 최대 수혜주로 강조해온 품목이다. 이밖에 항공기 및 부품(1700%)과 반도체 제조용 장비(53%), 기계(55%) 등의 수입도 크게 늘어났다.
더군다나 국내 장바구니 경제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먹거리 수입도 크게 늘어났다. 지난 한달 동안 유럽으로부터 돼지고기 수입(물량 기준)은 215%나 급증했고, 치즈와 가금류(닭·오리고기 등), 포도주 등도 각각 44%와 37%, 30%씩 늘었다. 이들 품목은 모두 협정 발효 즉시 수입가격이 떨어진 게 공통점이다. 실제로 돼지고기의 경우, 발효 이전 1㎏당 3612원이었던 수입가격은 발효 뒤인 지난달엔 2894원으로 20%가량 낮아졌다.
이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목들은 유럽 시장에서 이렇다 할 힘을 쓰지 못했다. 유럽 재정위기 등의 영향으로 국내 수출품에 대한 수요가 예전보다 크게 약화된 영향이 컸다. 품목별로는 선박(-70%)과 평판디스플레이(-44%), 무선통신기기(-21%), 반도체(-44%) 등의 수출이 극도로 저조한 모습을 보였다. 관세청은 “유럽연합 회원국의 재정위기 확산 우려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지난해 7월 선박 수출 호조에 따른 기저효과로 전체적인 수출 규모가 감소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형주 엘지(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양쪽의 교역구조를 보면 우리나라가 유럽에서 수입하는 제품의 상당수가 고가 완제품인 데 비해 유럽에 수출하는 품목은 중간재가 많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무역수지 적자는 예견된 일”이라고 말했다. 단기적으로 한국 제품들이 현지에서 가격이 떨어질 유인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소비재 수입의 경우엔 관세 즉시 철폐 품목이 많지만 자동차 같은 주요 수출품목은 단계적으로 철폐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보연 류이근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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