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 미국신용등급 AAA→AA+로 강등
안전자산 평가 미 국채 70년만에 첫 등급 하향
달러가치 추가하락 압력…기축통화 대안모색
안전자산 평가 미 국채 70년만에 첫 등급 하향
달러가치 추가하락 압력…기축통화 대안모색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이하 에스앤피)가 미국 국채 장기물의 등급을 70년 만에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춤에 따라 미국 달러와 국채를 중심으로 이뤄진 국제금융질서가 대격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다. 이번 조처는 한 세기 가까이 세계 최대 경제대국으로 군림해온 미국의 달러패권에 금이 가는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달러와 미국 국채는 단기적으로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한동안 현재 지위가 유지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점차 쇠락의 길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 등 주요 7개국(G7) 재무부 차관들은 이번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7일 긴급하게 전화회의를 여는 등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는 지금까지 국제금융시장에서 ‘무위험 자산’으로 통용됐다. 이에 따라 각국의 중앙은행은 물론이고 주요 금융기관들은 자산 운용의 기본 바탕으로 미국 국채를 편입해왔다. 또 자산을 구성할 때 미국 국채를 준거점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젠 ‘미국 국채=AA+’라는 새로운 상황에서 자산을 재구성해야 하는 처지에 빠졌다. 도이체방크의 분석가 짐 리드는 <파이낸셜 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금융자산 구성은 미국 국채를 기반으로 하고 최고 위험자산을 꼭대기로 한 피라미드 구조와 같다”며 “이 기반에 문제가 생긴다면 전체 금융시스템이 무너질 위험에 처한다”고 말했다.
미국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한다는 것은 미국 정부가 국채를 발행할 때 지불해야 하는 금리가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정부가 연간 수십억달러의 이자를 더 무는 것은 물론 미국의 기업과 가계가 부담해야 할 이자 비용도 크게 늘게 된다. 이는 더블딥(경기가 짧은 회복 뒤에 다시 침체하는 현상)의 공포가 밀려들고 있는 미국 경제에는 큰 악재가 아닐 수 없다.
관건은 한국·중국 등 각국 중앙은행과 주요 금융기관들이 미국 국채를 얼마나 매도할지 여부다. 일부에선 1998년 일본이 트리플A 등급에서 강등당한 뒤에도 일본 국채가격이 상승한 전례를 들어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인 투자자가 국채의 대부분을 갖고 있는 일본과 달리, 미국 국채는 외국인이 무려 46%를 손에 쥐고 있어 사정이 다르다. 에스앤피는 미국 국채 등급 강등으로 인한 가치 하락으로 국채 투자자들이 입을 손실액이 1000억달러(약 106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는데, 이런 손실을 감수하고 지금과 같은 투자 수준을 유지할지 의문시된다.
외국 기관들이 미국 국채 매도에 나설 경우 달러 가치는 연쇄적인 추가 하락 압력을 받게 된다. 이는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것이다. 달러는 1944년 브레턴우즈체제(달러의 금 태환을 보장하는 국제통화체제) 이후, 그리고 1971년 금 태환 중지 선언 이후에도 줄곧 국제적인 기축통화 구실을 해왔다. 달러 가치 유지라는 전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이런 전제가 무너졌다. 각국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는 이미 2002년 1월 대비 39%나 추락한 상황이다.
앞으로 국제통화질서는 달러의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최근엔 재정건전성이 뛰어난 스위스·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스웨덴 등의 통화가 안전자산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원활한 무역·금융거래를 위해서는 유로화, 위안화 등 지역의 유력 통화와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행하는 특별인출권(SDR) 등이 대안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신환종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미국이 기축통화인 달러와 대표적 안전자산인 국채를 매개로 금융패권을 쥐고 있었는데 그 신뢰가 무너졌다”며 “유형의 자산보다 무형의 자산 상실이 더 크고, 다극체제로의 변화의 시작점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 이재명 기자 hyun21@hani.co.kr
박현 이재명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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