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계, 단기차입 만기연장 거부
환율 급등으로 국내 시중은행들의 단기 외화조달에 비상이 걸렸다.
25일 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원-달러 환율이 한 달도 안 돼 9.3%나 치솟자 시중은행들이 달러 확보에 고심하고 있다. 제 코가 석자인 유럽계 은행들이 하나둘씩 단기 외화차입의 만기연장을 거부하고 있어서다.
금융당국은 지난 23일 시중은행 외환 담당자들을 불러 “금리에 연연하지 말고 최대한 유동성을 확보하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들은 외화채권 발행을 추진하고 있지만 금리는 최근 2주일 새 1%포인트 가까이 급등했다.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은 각각 4억~5억달러와 1억달러 이상의 외화채권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며 유럽의 대형 은행들도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어서 이들의 계획이 성공할지는 불투명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장 큰 문제는 없지만 외화 유동성 경색이 장기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의 외화자금 사정 악화로 대출자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특히 엔화 대출자들은 절박하다. 현재 국민, 우리, 신한 등 6대 은행의 엔화대출 잔액은 8484억엔(13조원)에 달한다. 그런데 엔화값이 이달 들어 10.0%나 뛰어 달러보다 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원-엔 환율은 23일 15.29원으로 2008년 10월 고점인 15.44원에 육박하고 있다.
엔화대출 1억원을 받은 사람은 엔화 환율이 10% 오르면 원금을 1천만원 더 갚아야 한다. 게다가 엔화값 급등으로 대출원금이 급증하면 개별 가산금리도 뛰어오른다. ‘기러기 아빠’들도 국외로 송금하는 원화환산 금액이 하루하루 늘어나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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