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은행직원들의 ‘번개 토크’
‘탐욕스런 금융권’ 비난 속에
평직원들 ‘과당경쟁’ 속앓이 실적탓 내돈들여 통장개설
“경영진이 창구서 일해봐라” 국내외에서 금융권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다. 1%와 99%로 상징되는 사회적 불평등의 중심에 금융권이 있다는 비판이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이 시대 은행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 24일 저녁 7시30분 서울 마포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20대 후반~30대의 국민은행 직원 8명이 ‘번개’ 모임을 열었다. 자기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은행원들이지만 이날만큼은 속에 품고 있는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꺼내 놓았다. 신분 보호를 위해 이름은 가명으로 했다. 이지섭 계장이 먼저 운을 뗐다. “금융권 연봉이 ‘상위 1%’에 들어가는지 모르겠지만, 은행원 대부분은 자신을 ‘99%’라고 생각해요. 무한경쟁에 내몰린 99%의 보통사람 말이에요.” 김철주 계장이 말을 받았다. “학교 후배가 국민은행 최종면접을 앞두고 ‘어떻게 면접 보면 좋겠냐’고 전화가 왔더라고요. 후배한테 ‘꼭 은행 가야 하느냐. 다른 데 있으면 그곳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니까요. 뱅커(은행원)는 무슨 뱅커예요. 뱅커가 아닌 방카(슈랑스)만 알아주는 은행원인데요….” 대화는 은행의 과당경쟁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모두 ‘자폭통장’(영업목표 달성을 위해 은행 직원이 자신의 돈으로 납입하는 통장을 말한다. 일명 ‘알카에다’ 통장으로도 불린다)에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거래 규모가 크지 않은 고객의 거래를 늘려 통장 잔고를 30만원 이상으로 만드는 ‘활동고객 유치 캠페인’을 특히 힘들어했다.
기득권 ‘도덕적해이’에 일침
비정규직 차별 문제도 제기 “최고 경영진의 성과 욕심탓
가계부채 늘린 거 아닌가요” 김미희 계장은 “3~4년 만에 다시 지점에서 근무하게 됐죠. 그런데 분위기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어요. ‘4대 천황’(어윤대 케이비금융지주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 시대가 되면서 그런 것 같아요. 하루는 셔터문을 내리자마자 지점장님이 직원들에게 1인당 한 개씩 통장 만들어 놓고 퇴근하라고 지시했어요. 직원들이 다 ‘박았죠’(자기 돈으로 통장을 만드는 것을 말함)”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김민혁 계장은 “실적 캠페인이 끝나는 날은 끔찍했죠. 캠페인 마지막날 직원 4명이 적금 400개를 만들어야 했거든요. 그날 밤 12시 넘어서까지 신규 통장 정리했어요”라며 어려움을 털어놨다. 김 계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회장이 ‘신한은행 지점은 밤 11시까지 불이 켜져 있는데 국민은행은 왜 불이 안 켜져 있냐’는 말을 했대요. 그 말이 나온 뒤부터 퇴근시간이 늦어졌어요. 우리는 일하는 기계가 아니잖아요. 한번 창구에서 직접 일해 보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정치권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최진성 차장은 특히 4대 천황 문제를 꼬집었다. “엠비(MB)가 금융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금융의 비전문가인 자신의 친구를 금융지주 회장으로 앉히잖아요. 문제는 금융지주사 회장이 감독기관보다 힘이 더 세다는 데 있죠. 과당경쟁하지 말라는 감독기관의 말을 안 듣는 거죠.” 은행원들은 기득권층의 도덕적 해이에도 일침을 놓았다. 김성식 과장은 “잘나가는 세무사나 의사분들에게 대출 업무를 할 때가 있죠. 그런데 그분들이 신고하는 연소득이 3000만원이 안 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의사나 변호사 같은 사회지도층이 중산층 연봉에도 못 미치게 신고하는 거예요. 국세청은 뭘 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조미진 계장은 비정규직의 애환을 얘기했다. “창구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는 업무는 별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은행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 뽑아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사무실에서 친하게 지내지만 월급이나 성과급이 나올 때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아요. 월급에서 너무 차이가 나고 성과급의 경우엔 비정규직이 못 받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김성식 과장은 금융권이 탐욕스러운 모습으로 비친 게 결국 경영진의 문제라고 말했다. “최고경영진은 그들의 재직기간 중에 최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직원을 혹독하게 볶죠. 단기성과를 높이기 위해서예요. 그런 과당경쟁의 결과는 뭔가요? 가계부채만 늘린 게 아닌가요?” 짬뽕 국물이 식어갔지만 수다는 그칠 줄 몰랐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평직원들 ‘과당경쟁’ 속앓이 실적탓 내돈들여 통장개설
“경영진이 창구서 일해봐라” 국내외에서 금융권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다. 1%와 99%로 상징되는 사회적 불평등의 중심에 금융권이 있다는 비판이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이 시대 은행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 24일 저녁 7시30분 서울 마포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20대 후반~30대의 국민은행 직원 8명이 ‘번개’ 모임을 열었다. 자기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은행원들이지만 이날만큼은 속에 품고 있는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꺼내 놓았다. 신분 보호를 위해 이름은 가명으로 했다. 이지섭 계장이 먼저 운을 뗐다. “금융권 연봉이 ‘상위 1%’에 들어가는지 모르겠지만, 은행원 대부분은 자신을 ‘99%’라고 생각해요. 무한경쟁에 내몰린 99%의 보통사람 말이에요.” 김철주 계장이 말을 받았다. “학교 후배가 국민은행 최종면접을 앞두고 ‘어떻게 면접 보면 좋겠냐’고 전화가 왔더라고요. 후배한테 ‘꼭 은행 가야 하느냐. 다른 데 있으면 그곳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니까요. 뱅커(은행원)는 무슨 뱅커예요. 뱅커가 아닌 방카(슈랑스)만 알아주는 은행원인데요….” 대화는 은행의 과당경쟁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모두 ‘자폭통장’(영업목표 달성을 위해 은행 직원이 자신의 돈으로 납입하는 통장을 말한다. 일명 ‘알카에다’ 통장으로도 불린다)에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거래 규모가 크지 않은 고객의 거래를 늘려 통장 잔고를 30만원 이상으로 만드는 ‘활동고객 유치 캠페인’을 특히 힘들어했다.
기득권 ‘도덕적해이’에 일침
비정규직 차별 문제도 제기 “최고 경영진의 성과 욕심탓
가계부채 늘린 거 아닌가요” 김미희 계장은 “3~4년 만에 다시 지점에서 근무하게 됐죠. 그런데 분위기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어요. ‘4대 천황’(어윤대 케이비금융지주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 시대가 되면서 그런 것 같아요. 하루는 셔터문을 내리자마자 지점장님이 직원들에게 1인당 한 개씩 통장 만들어 놓고 퇴근하라고 지시했어요. 직원들이 다 ‘박았죠’(자기 돈으로 통장을 만드는 것을 말함)”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김민혁 계장은 “실적 캠페인이 끝나는 날은 끔찍했죠. 캠페인 마지막날 직원 4명이 적금 400개를 만들어야 했거든요. 그날 밤 12시 넘어서까지 신규 통장 정리했어요”라며 어려움을 털어놨다. 김 계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회장이 ‘신한은행 지점은 밤 11시까지 불이 켜져 있는데 국민은행은 왜 불이 안 켜져 있냐’는 말을 했대요. 그 말이 나온 뒤부터 퇴근시간이 늦어졌어요. 우리는 일하는 기계가 아니잖아요. 한번 창구에서 직접 일해 보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정치권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최진성 차장은 특히 4대 천황 문제를 꼬집었다. “엠비(MB)가 금융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금융의 비전문가인 자신의 친구를 금융지주 회장으로 앉히잖아요. 문제는 금융지주사 회장이 감독기관보다 힘이 더 세다는 데 있죠. 과당경쟁하지 말라는 감독기관의 말을 안 듣는 거죠.” 은행원들은 기득권층의 도덕적 해이에도 일침을 놓았다. 김성식 과장은 “잘나가는 세무사나 의사분들에게 대출 업무를 할 때가 있죠. 그런데 그분들이 신고하는 연소득이 3000만원이 안 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의사나 변호사 같은 사회지도층이 중산층 연봉에도 못 미치게 신고하는 거예요. 국세청은 뭘 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조미진 계장은 비정규직의 애환을 얘기했다. “창구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는 업무는 별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은행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 뽑아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사무실에서 친하게 지내지만 월급이나 성과급이 나올 때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아요. 월급에서 너무 차이가 나고 성과급의 경우엔 비정규직이 못 받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김성식 과장은 금융권이 탐욕스러운 모습으로 비친 게 결국 경영진의 문제라고 말했다. “최고경영진은 그들의 재직기간 중에 최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직원을 혹독하게 볶죠. 단기성과를 높이기 위해서예요. 그런 과당경쟁의 결과는 뭔가요? 가계부채만 늘린 게 아닌가요?” 짬뽕 국물이 식어갔지만 수다는 그칠 줄 몰랐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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