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봉 사장 등 4200억원 받고 지분 34.6% 매각
아들은 부동산개발 관심…자금 필요했을 가능성
현대 정지선 회장 직접 나서…패션사업 본격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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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성의류 브랜드 업계의 독보적 1위로 백화점들의 입점 횡포에도 끄떡하지 않던 한섬이 현대백화점그룹으로 넘어갔다.
한섬은 대주주인 정재봉 사장 등이 보유한 지분 34.6%를 4200억원을 받고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의 현대홈쇼핑에 매각했다고 13일 밝혔다. 현대백화점그룹은 “한섬은 주요 백화점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회사로,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 가치도 높다”고 인수 배경을 설명했다.
한섬은 1987년 설립된 패션 전문 업체로, 타임·마인·시스템·에스제이에스제이(SJSJ) 등의 브랜드를 차례로 성공시켜 국내 여성복 시장의 1위 자리를 굳혔다. 타임옴므, 시스템옴므 등의 고급 남성의류 브랜드와 발렌시아가, 끌로에, 랑방, 지방시 같은 수입브랜드 라이센스도 갖고 있다. 현재 보유중인 브랜드만도 14개에 이른다. 지난해엔 5023억원의 매출을 올려 105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부채비율이 13%밖에 안될만큼 알짜 기업이다. 백화점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섬의 브랜드는 모두 백화점에서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며 “이른바 명품이라고 불리는 국외 패션 브랜드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백화점조차도 함부로 대할수 없는 존재”라고 평가했다.
한섬 정 사장은 왜 알짜배기 기업을 매각했을까. 시장에서는 정 사장의 아들인 정형진 상무가 패션사업보다는 부동산개발 쪽에 관심이 많고, 이 사업을 하는데 자금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한섬은 2008년 분할을 통해서 한섬피앤디라는 부동산개발회사를 설립했으며, 대표는 정 상무가 맡고 있다. 한섬피앤디는 같은해 경남 남해에 42만1263㎡ 부지에 골프리조트를 짓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섬피앤디는 골프리조트 사업에 1875억원 이상을 투자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실제로 한섬이 한섬피앤디를 분할한 이후 한섬 매각설이 퍼졌다.
2010년 한섬은 공시를 통해 에스케이(SK)네트웍스와 회사 매각 협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에스케이네트웍스와의 협상은 가격 차이를 좁히지 못해 결렬됐다. 이후 2010년 8월 한섬은 에스케이네트웍스에 중국 독점 판매권만을 넘겼다. 정 사장이 올해 71살로 고령인데다 패션이 시대 유행에 민감한 업종으로 잘나가던 다른 패션업체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매각을 최종 결심했다는 분석도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이 한섬 인수에 남다른 공을 들인 것도 매각 요인으로 꼽힌다. 인수대금 4200억원은 현대홈쇼핑의 내부 유보금 8800억원의 절반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홈쇼핑의 내부 유보금을 빼내 모두 현금으로 인수대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인수를 마무리짓기 위해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올 초 직접 한섬의 정 사장과 담판을 짓기도 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국내 여성 브랜드 1위 업체인 한섬 인수를 통해 패션 시장으로 본격 진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국외 브랜드 인수도 추진중이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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