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 공정위원장, 그룹 부회장들 20분간 만나
광고·건설·물류 등 4개분야 경쟁입찰 확대키로
강제력 없고 자료 안내놔 ‘생색내기’ 그칠수도
광고·건설·물류 등 4개분야 경쟁입찰 확대키로
강제력 없고 자료 안내놔 ‘생색내기’ 그칠수도
삼성, 현대자동차, 엘지(LG), 에스케이(SK) 등 4대 그룹이 ‘일감 몰아주기 자제’를 약속했다. 시스템통합(SI), 광고, 건설, 물류 4개 분야에서 계열사한테 물량을 일방적으로 몰아주던 수의계약 방식 대신에, 중소기업한테도 기회를 열어주는 경쟁입찰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반년 가까이 4대 그룹을 압박해 ‘자율선언’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실제 일감 몰아주기 관행이 뿌리 뽑히기까지는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어 보인다.
16일 오전 10시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 16층에서 4대그룹 부회장들을 만났다.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김순택 삼성 부회장,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 강유식 엘지 부회장, 김영태 에스케이 대표이사 사장 등 다섯 사람이 원형 탁자에 둘러앉았다. 지난 9월 공정위가 4대 그룹한테 ‘경쟁입찰 실시’ 등 모범거래관행 기준을 마련해달라는 요구를 던진 뒤 다섯달 만에 어렵사리 성사된 모임이다. 그런데 간담회는 20여분 만에 싱겁게 끝났다. 공정위는 ‘멍석’만 깔아주고, 대기업들이 오후에 구체적인 내용을 자율적으로 발표하기로 돼있었기 때문이다. 대형 유통업체들과 판매수수료 인하에 합의해놓고 구체적인 인하폭을 둘러싸고 몇달간 줄다리기를 하는 바람에 체면을 구겼던 공정위가 이번엔 ‘합의’ 대신 ‘자율’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간담회 직후 4대 그룹이 각각 내놓은 방안은 2분기부터 그룹 계열사 가운데 상장사들을 중심으로 경쟁입찰을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삼성의 경우, 시스템통합은 일부 보안상 불가피한 분야를 제외한 신규개발 프로젝트, 광고는 개별기업 이미지 광고와 매장광고, 건설은 사옥 등 일반건축, 물류는 일부 수직 계열화된 부분 이외의 전분야를 우선적으로 경쟁입찰에 부치기로 했다. 매출액의 83%를 차지하는 19개 상장사에 우선 적용되고, 하반기엔 비상장사로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 엘지, 에스케이도 물류 분야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삼성과 비슷한 내용을 발표했다. 대규모 내부거래시 적절성 등을 검토하는 ‘내부거래위원회’도 설치한다.
지난 11월 공정위가 대기업 계열의 시스템통합, 광고, 물류업체 20곳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2010년 연간 매출액 13조원 가운데 내부거래 비중이 71%나 된다. 특히 계열사간 내부거래에서 수의계약하는 비율은 평균 88%에 이른다. 김동수 위원장은 “역량있는 중소기업들이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갖게 되고, 계열사 물량에 안주해온 일부 대기업은 스스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제력이 없어 대기업들이 자칫 ‘시늉’에 그칠 수도 있다. 이날 4대 그룹은 “기업 내부비밀이다”, “계열사마다 사정이 다르다”는 이유를 들어, 수의계약에서 경쟁입찰로 돌리는 전체 물량이나 매출 규모 등의 수치를 내놓지 않았다. 현대차 글로비스(물류), 엘지 서브원(MRO)처럼 그동안 비판 받아온 대표적인 ‘일감 몰아주기’ 분야와 관련된 구체적인 실천계획도 언급이 없었다. 실제로 기업들은 공정위가 처음 자율선언을 요구했을 때만 해도 뾰로통한 반응을 보이다가, 공정위가 11월 내부거래 실태조사에 이어 12월 계열사에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준 대기업을 제재하자 압박을 느껴 자율선언에 동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채이배 경제개혁연대 회계사는 “공정위가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정기조사와 모니터링 강화를 병행하지 않으면 자율선언이 실효성을 거둘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수의계약, 경쟁입찰 여부 등을 공시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고, 상반기 중에 30대 그룹도 자율선언에 동참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황예랑 기자, 산업팀 종합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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