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딸들은 빵, 아들들은 외제차…‘돈되면 뭐든 한다’
서민음식부터 명품 패션·자동차까지 싹쓸이
계열사 유통망 통해 쉽게 돈벌어 ‘불공정 게임’
정부는 보조금까지 지급 ‘문어발식 확장’ 도와
서민음식부터 명품 패션·자동차까지 싹쓸이
계열사 유통망 통해 쉽게 돈벌어 ‘불공정 게임’
정부는 보조금까지 지급 ‘문어발식 확장’ 도와
‘돈만 되면 라면·비빔밥 가게도 차린다. 폼 나는 사업이라면 일단 손대고 본다. 외국 명품 브랜드라면 만사 제치고 달려든다.’
최근 들어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재벌그룹 2~3세들의 사업을 요약하면 이렇다. 숱한 외국 경험에서 보고 맛보고 입어보고 타본 제품들을 그대로 국내에 적용하면 사업 결과가 그리 나쁘지 않다. 특히 먹고 마시는 사업을 둘러싼 경쟁에 불이 붙었다. 또한 명품 패션브랜드와 고가 외제차를 즐기던 재벌가 자제들의 취미는 그대로 사업으로 이어진다. 재벌 2~3세들의 사업은 기존 재벌그룹 계열사들을 뒷배 삼아 성공가도를 달린다. 계열사들의 대형 유통망을 활용해 쉽게 지점을 늘리거나 계열 백화점·마트 등에 납품하는 식이다. 이런 와중에 자영업자·중소기업들은 경쟁에서 밀려나고 서민들은 고가 사치품에 위화감을 느낀다.
■ 빵과 커피에 몰려드는 재벌가 딸들 “고급 베이커리 업계는 공주님들의 경연장이다.” 제과업계 사람들이 농담으로 주고받는 말이다. 10대 그룹 중 네 곳이 제과·제빵에 손을 대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맏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2004년 세운 고급 베이커리 카페 ‘아티제’가 대표적이다. 호텔신라의 100% 자회사인 보나비를 통해 서울 청담, 여의도, 신도림 디큐브시티를 비롯해 서초동 삼성타운 등 삼성그룹 계열사 건물 등 전국 27곳에 아티제를 운영해왔다. 여론의 비판이 일자 삼성이 가장 먼저 철수를 결정했다. 호텔신라는 26일 오후 전격적으로 제과·커피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보나비의 아티제 사업부를 매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세계·롯데·현대차그룹도 베이커리 사업에 뛰어든 상태다. 지난해 7월 서울 양재동 현대차 사옥 1층에 있던 커피숍 새단장을 거쳐 ‘오젠’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오젠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딸들인 정성이·명이·윤이씨가 전무로 있는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가 운영하는 베이커리 카페다. 1호점은 제주 해비치호텔에 있고, 양재동 사옥에 2호점까지 냈다. 현대차그룹에선 “오젠은 개인회사가 아니고 해비치호텔의 한 사업부일 뿐이고, 영리 목적이 아니라 사원 복지 차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재계는 “현대차그룹의 딸들도 베이커리 카페 사업에 뛰어든 것”으로 분석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씨는 프랑스 베이커리 브랜드를 들여왔다. 장씨는 2010년 말 식품기업 블리스를 세우고 ‘포숑’이라는 제과점을 롯데백화점 12개 지점까지 늘렸다가 현재 7곳으로 줄였다. 지난해 7월 새단장한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의 포숑 매장 면적은 지하 식품매장에서 가장 넓은 330㎡(100평)가량으로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다. 장씨의 남편 양성욱씨는 지난해 브이앤라이프를 설립하고 독일산 아기용 물티슈 ‘포이달’을 수입해 새달부터 롯데마트와 롯데슈퍼에서 팔기로 했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딸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은 ‘달로와요’ ‘데이앤데이’라는 조선호텔 베이커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달로와요는 신세계백화점 10여곳에 입점한 고급 베이커리 브랜드다. 조선호텔 베이커리인 데이앤데이는 이마트에서 베이커리를 운영하며 반값 피자도 납품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호텔·백화점 등 기존의 안정적인 유통망을 이용해 손쉽게 프리미엄 시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재벌가 딸들이 뛰어드는 것”이라며 “완전히 새로운 사업에 나서는 것보다 리스크는 적고 수익을 내긴 쉬운 사업”이라고 말했다. 베이커리 사업은 한화도 하고 있다. 한화호텔앤리조트는 ‘에릭 케제르’란 빵집을 5곳 열었고, 한화갤러리아는 ‘빈스앤베리즈’란 델리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고급 베이커리 브랜드는 당장 골목상권까지 침범하진 않았지만 사업 확장의 범위를 가늠할 수 없어 소상공인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 비빔밥·덮밥·라면도 재벌이 하면 달라? 외식업에 뛰어드는 재벌그룹도 늘고 있다. 한식 세계화를 앞세우며 한식당에 진출하거나 외국 레스토랑을 들여오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식 중 대표적인 품목은 비빔밥이다. 씨제이푸드빌은 비빔밥을 주로 하는 ‘비비고’를 2010년 시작해 현재 국내에만 7곳에 점포를 열었다. 범엘지가로 분류되는 아워홈도 ‘밥이답이다’를 2010년 말 열며 비빔밥·덮밥 경쟁에 뛰어들었다. 밥이답이다는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이달 초 정부의 한식패스트푸드 사업자 공모에서 뽑혀 1년간 정부 보조금을 2억원가량 지원받는다. 이 사업은 한식의 국외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밖에도 애경그룹은 일본 치카라노모토사와 제휴해 일본 라면체인 ‘잇푸도’를 운영하고, 일본 카레 브랜드인 ‘도쿄하야시라이스클럽’도 들여왔다. 농심그룹은 일본에서 카레식당 브랜드 ‘코코이찌방야’를 들여와 영업중이고, 매일유업과 남양유업도 각각 인도식당 ‘달’, 이탈리아 식당 ‘일치프리아니’를 운영하고 있다. 대명그룹은 ‘베거백’ 브랜드로 떡볶이 사업에까지 진출했다. 파리바게뜨 등을 운영하는 에스피시(SPC)그룹은 2006년 떡 프랜차이즈인 ‘빚은’을 시작해 논란을 빚었다. 현재 점포 수만 170여개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이에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해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떡을 지정하면서 에스피시에 신규 출점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이러한 재벌기업들의 무차별 사업확장으로 골목상권의 자영업자들은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 씨제이푸드빌 관계자는 “메뉴를 보고 골목상권 침해라고 하는데, 비비고는 주로 오피스타운 등에 위치해 흔히 생각하는 동네상권 침해와는 거리가 있다고 본다”며 “비비고는 국외 진출을 위해서 뛰고 있으며 국내 골목상권 침해 목적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기업들의 외식업 진출은 일반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매출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4대 그룹 관계자는 “저런 업체들 때문에 기업들이 통째로 욕을 먹는 것”이라며 “기업가 정신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 토리버치·아르마니·벤츠·재규어·밴틀리…누가 수입할까 재벌가 2~3세들이 입고 메고 타던 것들을 국내로 수입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명품 패션브랜드 수입은 사실상 이들이 독점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둘째딸 이서현씨가 부사장인 제일모직은 이세이미야케, 꼼데가르송, 토리버치 같은 명품 브랜드 옷을 수입하고 있다. 고급 베이커리 사업을 벌이는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은 신세계인터내셔날에 창립부터 간여했다. 이 회사는 조르조 아르마니, 코치, 돌체앤가바나 등을 들여와 판다. 신격호 회장의 외손자이자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의 아들인 장재영씨는 비엔에프통상을 운영한다. 비엔에프통상은 폴스미스, 캠퍼 래들리 등 외국 제품을 수입하는 회사다.
이들 재벌그룹은 “명품 브랜드 수입이 무슨 문제냐”고 반문한다. 서민들과 상관없지 않으냐는 논리다. 하지만 수입 명품업체들 때문에 국내 중소 패션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마당에 재벌기업들이 이를 부채질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중소업체들은 “유명 브랜드를 수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재벌그룹은 기존 거래선을 활용해 쉽게 장사를 한다”고 설명했다.
재벌가 딸들이 주로 베이커리·커피 사업과 패션브랜드 수입에 나선다면, 아들들은 수입 자동차에 관심이 많다. 이들이 평소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데다, 재벌가의 특성상 ‘비싼 차’는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두산그룹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이 이사로 있는 디에프엠에스(DFMS·옛 두산모터스)는 혼다, 재규어, 랜드로버 등을 수입해 판다. 박용곤 명예회장 등 3세들이 지분의 58.5%, 박정원 회장, 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 등 4세들이 나머지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세 아들인 조현준, 조현문, 조현상 형제도 벤츠 딜러인 더클래스효성, 도요타 딜러인 효성토요타의 지분을 각각 3.48%와 20%씩 보유중이다. 지에스(GS)그룹에도 수입차 딜러 계열사가 있다. 렉서스를 판매하는 딜러사인 센트럴모터스는 허창수 지에스그룹 회장과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의 아들인 허준홍씨 등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회사다.
김진철 조기원 황예랑 김경락 박현 기자 nowhere@hani.co.kr
■ 비빔밥·덮밥·라면도 재벌이 하면 달라? 외식업에 뛰어드는 재벌그룹도 늘고 있다. 한식 세계화를 앞세우며 한식당에 진출하거나 외국 레스토랑을 들여오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식 중 대표적인 품목은 비빔밥이다. 씨제이푸드빌은 비빔밥을 주로 하는 ‘비비고’를 2010년 시작해 현재 국내에만 7곳에 점포를 열었다. 범엘지가로 분류되는 아워홈도 ‘밥이답이다’를 2010년 말 열며 비빔밥·덮밥 경쟁에 뛰어들었다. 밥이답이다는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이달 초 정부의 한식패스트푸드 사업자 공모에서 뽑혀 1년간 정부 보조금을 2억원가량 지원받는다. 이 사업은 한식의 국외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밖에도 애경그룹은 일본 치카라노모토사와 제휴해 일본 라면체인 ‘잇푸도’를 운영하고, 일본 카레 브랜드인 ‘도쿄하야시라이스클럽’도 들여왔다. 농심그룹은 일본에서 카레식당 브랜드 ‘코코이찌방야’를 들여와 영업중이고, 매일유업과 남양유업도 각각 인도식당 ‘달’, 이탈리아 식당 ‘일치프리아니’를 운영하고 있다. 대명그룹은 ‘베거백’ 브랜드로 떡볶이 사업에까지 진출했다. 파리바게뜨 등을 운영하는 에스피시(SPC)그룹은 2006년 떡 프랜차이즈인 ‘빚은’을 시작해 논란을 빚었다. 현재 점포 수만 170여개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이에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해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떡을 지정하면서 에스피시에 신규 출점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이러한 재벌기업들의 무차별 사업확장으로 골목상권의 자영업자들은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 씨제이푸드빌 관계자는 “메뉴를 보고 골목상권 침해라고 하는데, 비비고는 주로 오피스타운 등에 위치해 흔히 생각하는 동네상권 침해와는 거리가 있다고 본다”며 “비비고는 국외 진출을 위해서 뛰고 있으며 국내 골목상권 침해 목적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기업들의 외식업 진출은 일반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매출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4대 그룹 관계자는 “저런 업체들 때문에 기업들이 통째로 욕을 먹는 것”이라며 “기업가 정신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두산그룹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이 이사로 있는 디에프엠에스는 혼다, 재규어, 랜드로버 등을 수입해 판다. 사진은 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에서 판매하는 재규어 올 뉴 XJ 5.0SC LW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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