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여론 일자 ‘아티제’ 철수·담합근절 선언 등 신속 대응
“삼성 요즘 왜 저러는 거야?”
26일 오후 호텔신라가 베이커리 카페 ‘아티제’ 철수 방침을 전격 발표하자, 복수의 재계 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텔신라의 아티제 철수는, <한겨레>가 지난 25일치에서 재벌그룹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을 지적하는 등 여론의 비판이 쏟아진 데 이어 26일 이명박 대통령이 재벌의 중소기업·영세자영업자 영역 침범을 “윤리적인 문제”라고 성토한 직후 나온 결정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도리어 “운이 안 좋은 셈”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아티제의 철수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하필 철수 계획 발표가 우연히 재벌의 문어발 확장 논란 시점과 맞물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그룹 쪽의 이런 설명은 내부에서도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최근 삼성의 행보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마침 아티제 철수 방침 발표 전날 ‘담합 근절’ 선언도 나왔다. 지난 25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이인용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은 수요 사장단 회의 브리핑에서 “담합 근절이 무척 강조됐다”는 점을 유난히 강조했다. 그는 김순택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최지성 삼성전자 대표이사(부회장) 등이 줄줄이 나서서 “담합은 해사행위다”, “담합을 부정으로 간주해 무관용 처벌하겠다” 등 고강도 발언을 쏟아냈다고 전했다.
김상균 준법경영실장(사장)은 2월 안에 담합 근절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최근 삼성전자와 엘지(LG)전자의 가전제품 가격담합 사실이 드러나고, 소비자단체가 집단 손해배상 소송에 나서는 등 비판 여론이 일자 신속한 대응에 나선 것이다.
이는 과거의 삼성그룹과 상당히 다른 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껏 사회적으로 비판 여론이 일 때도 꿈쩍하지 않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선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발빠른 대응능력이란 풀이도 나온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이 활발해지면서 시민의식이 달라지고 재벌에 대한 비판적인 분위기가 커진데다 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미래전략실이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최근 발언이 배경이란 풀이도 나온다. 이 회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사회’를 유난히 강조했다. “경쟁력은 안에서는 사람과 기술, 밖에서는 사회의 믿음과 사랑에서 나온다. 사회로부터 믿음을 얻고 사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삼성은 국민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협력회사가 세계 일류의 경쟁력을 갖추도록 정성을 쏟아야 하고, 어려운 이웃과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우리사회의 발전에 동참해야 한다.”
아티제 브랜드를 보유한, 호텔신라의 100% 자회사인 보나비를 종업원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도 이 회장의 사회 책임 강조와 맥을 같이 한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아티제를 정리할 때 직원들의 고용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종업원지주회사로 전환하거나 사회공익재단에 기부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삼성사회봉사단은 2010년부터 추진중인 사회적 기업 지원 사업 매뉴얼을 공개하겠다고 지난 18일 밝혔다. 또한 삼성전자 상생협력센터는 신기술 개발 공모제를 통해, 기술과 아이디어는 있지만 개발자금이 부족한 기업 4곳을 지원하기로 했다.
삼성은 이를 상생 경영 및 준법 경영의 실천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짬짜미만 놓고 봐도,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짬짜미 사실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한 적이 없다. 더구나 삼성생명은 보험상품 금리 담합에 대한 공정위 조사가 개시되자 자진 신고에 나서 과징금을 70%나 할인받고, 그도 부족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담합은 통상 1등이 나서기 때문에 이뤄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다른 관계자는 “담합의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나서서 마치 직원들한테 모든 책임이 있는 것처럼 담합을 강력 처벌하겠다고 나서니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재벌 빵집’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이부진 사장의 호텔신라가 다른 재벌 2~3세보다 앞선 2004년 가장 먼저 베이커리 카페 문을 열었다. 주로 호텔신라, 삼성사옥, 삼성서울병원 등 삼성 관련 건물에 입점하는 식으로 매장 수를 늘렸다. 삼성 쪽은 이를 들어 골목 상권 침해와는 거리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계열사간 부당지원 논란까지 피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삼성의 발빠른 대응을 놓고, 그룹 이미지 관리 차원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이건희 회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등의 언론 노출이 부쩍 늘어난 것도 눈길을 끈다. 이달 중순께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가 대표적인 예다. 예년과 달리 이번 전시회에선 이재용 사장이 고객들을 만나는 장면이 언론에 자주 공개됐고, 이서현 부사장이 따로 전시장을 둘러보는 모습이 언론에 생중계되다시피 했다. 이건희 회장 역시 2년 만에 부인과 자녀들을 앞세우고 전시장을 찾았고,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 일가의 소비자가전전시회 방문은 홍보영상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번 전시회에서 이건희 회장의 홍보영상을 만들었다”며 “이런 행사에서 홍보영상 찍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번 영상 제작은 미래전략실 비서팀 지시로 외부 영상 전문가 6명으로 구성된 별도 팀이 투입돼, 커뮤니케이션팀에서도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커뮤니케이션팀 임원은 “삼성전자 사내방송팀과 그룹 사내방송팀이 사내 방송 및 사료를 만들려고 투입됐지만 홍보영상 제작은 처음 듣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 회장 일가의 적극적인 행보와 더불어 삼성 그룹의 발빠른 여론 대응과 관련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삼성에스디에스(SDS) 상장설이 부각돼 눈길을 끌고 있다. 삼성그룹이 삼성에스디에스를 올해 안에 상장하기 위한 최종 검토를 마쳤고 조만간 상장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삼성에스디에스의 상장설은 몇년 전부터 간헐적으로 증권시장에 떠돌아왔다. 삼성에스디에스의 1대 주주는 삼성전자로 21.67%의 지분을 갖고 있고, 삼성물산과 삼성전기도 각각 18.29%와 8.44%를 보유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사장, 이부진 사장, 이서현 부사장 등 이 회장 일가의 지분율 17.18%다.
증권업계에서는 삼성에스디에스 상장을 삼성그룹의 3세 승계 수순으로 보고 있다. 이재용 사장의 삼성에스디에스 지분 8.81% 가치는, 27일 현재 장외시장 거래가 12만5000원대로 계산할 때 8000억원 가량이다. 3세 승계를 위해서는 계열사 지분을 정리해야 하는데, 이 자금이 유용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삼성에스디에스는 지난해부터 삼성전자 등 전자계열사들의 통합 물류시스템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 등으로부터 넘겨받을 물류 매출액은 연 5조원 가량으로 평가된다. 현재 매출 4조원대의 삼성에스디에스의 상장시 주식 평가액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삼성에스디에스 연내 상장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올해도 내년에도 삼성에스디에스 상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쪽은 삼성의 이런 처지를 들어 삼성이 짬짜미나 재벌 딸들의 빵집 문제에 대해 발빠르게 대응하는 것에 대해 “사회 분위기로 볼 때 자칫 사소한 일로 삼성그룹의 3세 승계 등 ‘큰 일’에 차질을 부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미리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라고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201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의 모습.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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