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 국제 전문가 회의서 우려·비판 쏟아져
칠레 등 6개국 경제학자, 각국 협상가에 서한
칠레 등 6개국 경제학자, 각국 협상가에 서한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각국 전문가의 목소리가 나와 주목받고 있다.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열리고 있는 티피피 제11차 회의에서 ‘투자 분야 협상가를 위한 비판적 견해’라는 시민사회단체 주최의 오찬 세미나가 열렸다. 지난 2일 미국과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등에서 온 변호사와 통상법 전문가들이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천정배 민주통합당 의원도 인터넷 화상전화로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는 우리나라 상황을 전했다.
미국 최대의 시민단체 ‘퍼블릭 시티즌’의 국제무역감시센터 소장이자 변호사인 로리 왈리크는 “투자자가 국가의 정책을 직접 공격하도록 보장함으로써 국가와 기업 간의 힘의 균형을 뒤바꾼다”고 지적했다. 이에 미국에서 정치인은 물론 정부 관료, 종교인,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잇따라 우려를 표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해 8월 미국 주의회 연합체인 미국 주정부의회 전국회의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도입한 투자협정과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결의서를 채택했다. 또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칠레, 말레이시아, 페루, 뉴질랜드 등 6개국 경제학자 100여명이 최근 국가가 자본통제 정책을 펼 수 있도록 협상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각국 티피피 협상가들에게 보냈다.
왈리크 소장은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급증하는 추세라는 점을 강조했다. 1950년대에 제도가 시작됐지만,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서 1972년부터 2000년까지 결정한 중재판정은 50건에 그쳤다. 하지만 2000년 이후로는 173건의 중재판정이 나왔고, 새로운 사건도 128건이나 더해졌다. 특히 지난해에만 38건이 접수됐다.
이처럼 소송이 증가하는 이유를 말레이시아 시민단체인 ‘제3세계 네트워크’의 샌야 스미스 선임연구원은 로펌의 활약으로 분석했다. 스미스는 “엄청난 법률비용을 노리고 로펌들이 착수금도 받지 않고 승소하면 성공보수를 받겠다고 약정한 뒤 투자자를 대리해 소송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경우 중재인까지 수억원의 보수를 받기 때문에 법률비용만 수십억원이 들고, 국가가 승소하더라도 세금으로 그 비용을 떠안아야 한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노동정책도 위협한다고 뉴질랜드의 무역노동조합 소속 경제학자인 빌 로젠버그는 지적했다. 그는 유럽계 다국적 회사인 피에로 포레스티 등이 2007년 2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우대정책이 국제관습법상 최소대우기준에 위반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남아공 정부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폐지한 뒤 흑인과 백인과의 경제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 기업들이 관리자와 종업원 비중, 소유 지분 등에 있어 일정 부분을 흑인에게 배분하도록 하는 정책을 펴왔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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