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재벌체제 옹호론 주요 사례
삼성·두산 등 총수일가 치부 잇단 노출속
불투명 지배구조 개선촉구 움직임 급물살
불투명 지배구조 개선촉구 움직임 급물살
삼성 최고위층의 불법 대선자금 연루와 두산 총수 일가의 ‘검찰 투서’ 공방 등으로 오너경영의 치부가 속속 드러나면서 ‘재벌 개혁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특히 재벌 소속 금융계열사 의결권을 제한하는 개정 공정거래법에 대해 삼성 3개 계열사가 “재산권을 침해하고 경영권 안정을 위협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황이어서 재벌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두산중공업 회장)은 최근 “그룹 회장직은 법적 권한이 있는 자리가 아니고, 집안의 대표이자 대주주의 대표로 보면 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집안의 대표’일 뿐인 총수 한사람이 많게는 수십개에 이르는 재벌 그룹 계열사의 경영권을 한손에 쥐고 휘두르고 있다. 총수 일가가 가진 지분도 사실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 4월1일 기준으로 자산규모 6조원 이상의 대기업집단 14곳에서 그룹 총수 일가가 가진 평균 지분율은 9.71%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이 계열사간 순환출자 등을 통해 확보한 의결 지분은 41.14%로 실제 소유 지분의 4.24배나 된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 일가가 4.41%의 지분을 갖고 31.13%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룹 구조조정본부는 순환출자 등을 통해 이 회장 일가가 5%도 안 되는 지분으로 62개 계열사를 좌우하는 것을 시스템상으로 가능하게 하는 핵심 구실을 하고 있다. 재계 서열 10위권인 두산도 구조가 다르지 않다. 박용성 회장 일가는 5.78%의 지분으로 무려 9.9배에 해당하는 57.36%의 의결권을 행사한다. 박 회장은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고 국제기준(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다는 전제 위에서 ‘오너의 경영참여를 반대해선 안 된다’는 논리를 펼쳤지만, 실제 경영상의 주요한 결정은 이사회도, 주주총회도 아닌 가족회의에서 이뤄졌다. 총수의 전횡과 독단은 경영 투명성을 가로막고 책임 경영을 저해한다. 총수의 지배권을 유지하고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소속 계열사들은 숱한 불법·편법을 동원하고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삼성과 두산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재벌 지배구조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례는 많다. 현대그룹 ‘왕자의 난’이 그랬고, 에스케이의 분식회계 사태, 한보 정태수 전 회장의 ‘머슴론’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삼성·두산 사태를 계기로 재벌개혁에 박차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이사회 중심의 책임 경영을 하는 것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민주노동당은 삼성·두산 사태에 대한 논평에서 “두산그룹 총수 일가가 펼치고 있는 가족간 암투극은 순환출자 구조를 매개로 한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를 보여준다”고 밝히고, “이건희 회장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공여죄로 즉각 구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 역시 “이사회를 무시한 채 (기업을) 마치 특정 가문의 전유물인 양 세습하고 나눠 갖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두산그룹 사태와 같은)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논평했다. 이들은 삼성·두산 사태에 대해 검찰 수사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어 재벌 개혁론은 앞으로 더욱 힘을 받을 전망이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도 23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국표준협회 주최 최고경영자 세미나에서 “우리나라는 재벌그룹 주도로 성장하면서 계열사간 과도한 순환출자, 경쟁 제한 등의 문제점이 나타났다”며 “대기업집단 정책은 재벌 주도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폐해를 시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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