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마다 수립하는 ‘국기본’ 거북이 행보 왜?
반원전 여론 의식해 차기 정부로 미루려는 태도
“MB 정부 들어 ‘원전 여론 쇄국’ 더욱 강화돼”
반원전 여론 의식해 차기 정부로 미루려는 태도
“MB 정부 들어 ‘원전 여론 쇄국’ 더욱 강화돼”
국가에너지기본계획(국기본)이란 게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에너지 소비가 얼마나 될 것 같은데, 이를 맞추려면 원자력 등 에너지원별 비중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지 등 에너지정책의 기본 가닥을 잡는 계획이다. 그 핵심엔 국내외 안팎에서 커다란 논란거리로 떠오른 원자력을 줄일 것인지 아니면 더 늘릴 것인지에 있다.
에너지 정책의 최상위 국가전략으로 불리는 국기본은 20년을 내다보고 5년마다 수립된다. 2008년에 수립된 국기본은 법에 따라 내년에 다시 수립·이행돼야 한다. 올해 기본틀이 어느정도 마련돼야 하지만, 정부는 아직 착수조자 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주무 부처인 지식경제부가 원전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피하고, 대선을 앞둔 정치적 부담을 의식해서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20일 지경부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일정은 없다”며 “내년에 차질 없이 시행될 수 있도록 올해 준비 작업을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나중에 새 정부의 정책 방향과 비전을 반영한다고 하더라도, 올해 말이나 내년 초까지는 뼈대를 마련해놔야 한다”며 “아직 공식 착수조차 하지 않아 절차가 너무 늦어지는 것같다”고 말했다. 계획은 착수부터 수립까지 길게는 2년 이상이 걸린다.
정부가 ‘거북이 행보’를 보이는데 정치적 고려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복수의 지경부 관계자들은 “어차피 조만간 정권이 바뀔텐데 지금 해봤자, 새 정권 들어서면 다 바뀔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가의 주요한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면서 정치권 눈치보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홍석우 지경부 장관조차 국기본 수립과 관련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다음 정부가 어떻게 할지 안 할지에 대해서 말하기는 조금 그렇다”고 말했다. 국기본 수립이 현 정부의 ‘숙제’가 아닌 차기 정부의 과제라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에는 최근 원전을 둘러싼 논란을 가급적 피하려는 관료들의 태도 또한 배어 있다. 복수의 지경부 관계자들은 “지금 국기본에 착수하게 되면 원전과 관련한 논란만 괜히 커질텐데, 굳이 서둘러 할 필요가 있겠냐”라고 말했다. 정부는 2008년 수립한 국기본을 통해 원자력의 비중(발전량 기준)을 2030년까지 59%로 늘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24년까지 현재 21기인 원전은 34기로 증설한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2010년 초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원자력 비중을 더 늘리는 내용을 뼈대로 한 국기본 수정안을 내놓고 논의를 진행했었다. 하지만 그해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면서 논의를 전면 중단했다. 그러면서도 원전 부지를 선정하는 등 지난해 하반기부터 원전 확대 정책을 다시 재가동하고 있다. 유정민 고려대 지속발전연구소 연구교수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에너지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이럴 때일수록 국기본을 수립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 정부가 국기본 수립 과정에서 대선이란 정치적 일정과 반원전 여론을 의식하면서 차기 정부로 숙제로 미루고 있지만, 이는 과거와도 사뭇 다른 태도다. 국기본은 1997년 에너지합리화법에 의거해 처음 만들어졌는데, 제15대 대선이 있던 해였다. 2차 국기본도 1년6개월의 준비 과정을 거쳐 2002년 11월 제16대 대선을 코앞에 두고 최종안이 만들어졌다.
노무현 정부는 2006년 3월에 3차 국기본 수립에 착수했다. 당시 계획 수립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원래 2007년 말까지 계획을 수립하려고 했지만 당시 기름값이 뛰어 수정할 게 생기면서 현 정부가 들어선 2008년 8월에서야 확정됐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계획 수립은 기한인 5년을 초과했다. 현 정부는 과거와 연속성을 두지 않은 채 2008년 확정된 사실상 3차 국기본을 ‘1차 국기본’이라고 명명했다. 진상현 경북대 교수(행정학)는 “과거에도 원자력 관련 의사결정을 할 때 일반국민과 정치권이 배제돼 왔지만, 현 정부 들어서 그런 ‘원자력 쇄국정책’적 특징이 더욱 강화됐다. 상황이 바뀌고, 국민 여론도 바뀌고 있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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