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
오는 24일 경영복귀 2년을 맞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격하게 화를 냈다. 이 회장은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과 이에 따른 형사처벌로 퇴진한 뒤, 2010년 3월 복귀했었다.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3층 기자실에서 이인용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은 무겁게 입을 열어 “회장님이 격노하셨고 강하게 질책하셨다”고 전했다. 격노의 직접 원인은 지난 18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공개한 ‘삼성전자의 조사 방해 사건’이다. 지난해 3월 삼성전자 고위 임원의 지휘로 공정위의 불공정 행위 조사를 막은 장면들이 샅샅이 드러났고, 공권력에 도전한 삼성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 회장의 격노는 이날 아침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을 통해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에 전달됐다. 김 부회장은 사장단 회의에서 “정부의 정당한 공무 집행을 방해한 행위는 명백한 잘못”이라며 “조사방해 행위가 회사를 위한 것이라고 잘못 여기는 것이 아닌가. 이는 일부 임직원의 그릇된 인식”이라고 말했다고, 이 부사장이 전했다. 아울러 김 부회장은 사장들에게 “앞으로 회사를 평가할 때 정량적 경영실적 이외에 얼마나 법과 윤리에 맞춰 준법경영을 잘 실천하고 있는지 정성적으로 평가하는 방법도 검토하겠다”며 “법과 윤리를 위반한 임직원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한 김 부회장은 공정위 조사 방해에 나선 임직원들을 “강하게 징계하겠다”고도 밝혔다.
이어진 토론에서 사장들은 “잘못된 인식과 관행이 남아있는 것 같다”, “이번 공정위 조사 방해 사건을 잘못된 인식과 관행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도’를 걷는 것이 장기적으로 회사에 도움이 된다”, “임직원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외부에서 존경받는 회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이 부사장은 전했다. 이 부사장은 이와 관련해 “변명을 하려는 게 아니고, 명백히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며 자기반성을 하는 것”이라며 “김 부회장에게 삼성그룹 임직원들이 사내 통신망에 올린 글들을 전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공정위 조사 방해에 따른 사회적 비판이 거세자 삼성이 발빠르게 움직인 셈이지만, 삼성에 불리한 여러 여건도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일고 있는 재벌개혁 움직임은 물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 이숙희씨 등 이건희 회장의 맏형과 누나가 걸어온 유산소송도 삼성엔 민감한 사안이다. 이런 정황들 때문에 삼성은 최근 이례적으로 담합근절 선언에 적극 나서는 등 여론의 추이에 발빠르게 대처해왔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의 경영복귀 2년을 맞는 때에 악재가 터져나오고 있다”며 “지난해 삼성전자의 최대실적 등 자랑할 거리가 많은데 악재들에 묻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잘못을 인정하고 나가는 건 칭찬할 만한 일”이라면서도 ”공정위 조사 방해가 1년 전에 있었는데 지금까진 뭘 했나. 1년간 공정위가 조사하는 동안 고위급들이 모두 보고를 받았을 텐데 더 빨리 적극적으로 대처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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