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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2조 8천억·8만2천명…‘저축은행 사태’ 책임은 누가?

등록 2012-05-09 18:19수정 2012-05-09 18:21

대형화·겸업화 감독 소흘한 금융당국의 ‘정책 실패’
피해액 2조8000억원, 피해자 8만2000여명.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저축은행 20곳이 문을 닫으며 발생한 피해 규모다. 저축은행 대주주와 경영진들의 부도덕과 불법행위도 문제지만, 서민금융기관이던 저축은행의 대형화·겸업화를 부추기고 감독은 소홀히 한 금융당국의 정책 실패가 근본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 실패에 대해 책임지는 이는 없다. 전직 고위 관료로서 당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신용금고를 저축은행으로 ‘분장’ 한 시중은행 고위 임원은 9일 “모든 불행은 신용금고에 저축은행 이름을 붙여준 순간부터 시작됐다”고 잘라 말했다. 명칭 변경으로 일반인들은 개인 소유인 ‘금고’를 ‘은행’으로 인식하게 됐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없었다. 이름 변경은 당시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서도 논란이 됐으나 정부의 대책은 고작 “‘저축’과 ‘은행’을 띄어쓰지 못하게 하겠다”(이종구 재경부 국장) “법을 공표할때 (일반은행과) 다르다는 것을 알리겠다”(이정재 재경부 차관)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는 신용금고에게 ‘시련의 시기’였다. 외환위기 이후 지방 중소기업이 도산하면서 이들을 주된 고객으로 하던 신용금고 역시 잇따라 부실화됐다. 더군다나 신용금고의 대주주였던 정현준·진승현 등의 대형 게이트 사건이 발생하면서 고객들은 멀어져갔다. 이처럼 ‘부실’과 ‘비리’로 얼룩진 신용금고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저축은행’으로 포장해 주는 일이었다. 이 정책은 이후 10년 가까이 이어질 정책실패의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예금자 보호한도가 일반 은행 수준인 5000만원으로 확정돼 예금이 몰리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당시 책임자였던 진념 재정경제부 장관은 경기지사 후보, 대기업 사외이사 등을 거쳐 현재 케이피엠지(KPMG) 코리아의 고문을 맡고 있다. “자본금이 1000억원인 곳(일반 은행)과 자본금이 평균 40억인 곳(신용금고)하고 똑같이 뱅크(은행)란 말이다. 나중에 피해가 생기면 장관·차관은 나가버릴텐데 누가 책임지느냐”고 한탄하던 정의화 당시 한나라당 의원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 8·8클럽 선정해 대출규제 폐지 2005년 9월 예금보험공사는 저축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규모가 전년보다 44.6% 증가한 점을 들어 “부동산 경기가 하강할 경우, 대출의 건전성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은 두달 뒤 ‘제로베이스 금융규제 개혁방안’을 발표해 고정이하(연체 3개월 이상) 여신 8% 미만,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8% 이상인 은행을 ‘88클럽’이라고 규정하며, 같은 회사에 80억 이상을 대출할 수 없도록 한 규정을 폐지했다. 당시는 서민 소액대출이 2003년 카드사태로 급격히 부실화되던 때다.

정부의 대책은 규제완화였다. 대출한도 규제가 폐지되면서 저축은행들은 서민 대출 대신 대거 부동산 피에프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또 88클럽은 2006년에는 전체 저축은행의 절반에 이르게 된다. 피에프에 뛰어들기 위해 저축은행들은 후순위채를 무분별하게 발행해 자기자본을 늘렸다. 후순위채는 저축은행이 망해도 돌려받지 못하기 때문에, 수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했다. 규제완화의 장본인인 윤증현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지난해 저축은행 청문회에 출석해 “당시로선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윤증현 당시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들어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고, 총 책임자였던 한덕수 재정경제부 장관은 주미대사를 거쳐 현재 한국무역협회 회장이다.

■ 인수·합병으로 ‘부실폭탄’ 확산 이미 서민금융기관으로서의 기반을 잃은 계속해서 건전성 악화와 경연난에 시달린다. 정부의 선택은 ‘폭탄돌리기’였다.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될 경우 벌어질 혼란을 피하기 위해, 금융위원회는 ‘우량’ 저축은행에게 부실은행을 떠넘기는 방식을 택했다. 부실은행을 인수하면 영업권역 외에 지점 5곳을 추가설치하도록 한 것이다. 부실이 드러난 저축은행을 우량 저축은행에 넘기면서 저축은행의 건전성은 크게 악화됐다. 지난해 영업정지된 부산저축은행도 당시 금융당국의 ‘권유’로 부실이 2500억원에 이르던 대전저축은행 등을 인수해야 했다. 저축은행 청문회 당시 여야 의원들의 이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자,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전대미문의 전 세계 금융위기가 오면서 정책 수정도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수조원대의 자금을 굴리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지난해와 올해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은 20곳에 이른다. 금융당국은 자산관리공사(캠코)에 부실채권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부실을 숨겨두고 있다. 내년부터 저축은행이 되사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또다시 줄줄이 영업정지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런 부실을 초래한 정책실패 담당자가 처벌을 받은 사례는 없다. 참여연대는 저축은행 정책의 책임자 26명 가운데, 여전히 11명이 금융당국의 관료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김진욱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간사는 “금융관료들은 정책실패에 대해 책임을 지기는 커녕, 퇴직후 금융기관·로펌 등으로 취업해 오히려 감독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실패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한 금융관료는 관련 정책라인에서 배제하고, 금융정책-감독-사후구제 기구를 철저히 분리해 상호견제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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